레고랜드 사태, 채권 시장의 눈으로 바라보다
레고랜드 사태, 채권 시장의 눈으로 바라보다
  • 탁영채 기자
  • 승인 2022.12.1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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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 일자별 정리(출처: NEWNEEK)
▲레고랜드 사태 일자별 정리(출처: NEWNEEK)

재정 수백억 원을 아끼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행동으로 인해 정부가 수백조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청구서로 받았다. 해외 투자자에게 한국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 뼈아픈 선례를 남긴 레고랜드 사태의 이야기다.

강원도 춘천시의 레고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레고 테마파크 조성을 목표로 사업비만 2,600억 원, 주변 부지 개발비용을 합해 총 1조 원을 들이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개발 도중 대규모 선사시대 유적의 발견과 코로나19 사태가 겹치면서 레고랜드 개장이 늦춰졌고, 이에 따라 사업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추가 자금 조달을 위해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이하 GJC)는 2,050억 원의 자산 유동화 기업 어음(이하 ABCP)을 발행했고, 강원도에서 이를 지급 보증했다. ABCP란 특수목적회사를 세워 증권, 주택 저당 등을 담보로 발행한 기업 어음을 말한다. 지난 9월 ABCP의 만기일이 도래했으나, GJC가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법원 회생을 신청했다. 뒤이어 레고랜드 개발 사업 ABCP의 채무 보증을 선 강원도가 예상치 못하게 보증 의무를 거부하면서 ABCP가 부도처리 됐다. 

강원도가 채무 보증을 서면서 기업 어음 최고 신용등급인 A1 등급을 받은 레고랜드 ABCP는 채권 시장에 강한 신뢰를 주며 발행됐다. 그러나 이번 레고랜드 사태로 강원도는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사태 초기에는 빚보증 채무 불이행이 강원도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하나의 일로 치부됐으나, 상환 기간이 1~2년 이내인 단기채권 시장을 시작으로 그 여파가 채권 시장 전반에 확산했다. 채권 시장의 신용 하락으로 인해 지자체 채권과 A1 등급 이하의 채권은 물론 최상위 신용도를 가진 공사채마저 채권 발행에 실패하는 등 전방위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A1 등급 채권이 신뢰를 잃으면 채권 시장 전반이 마비될 수 있으므로 결국 중앙정부가 돈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정부는 채권 시장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ABCP 채무 금액인 2,050억 원의 250배에 달하는 50조 원의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1조 6,000억 원가량의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재원을 지난 10월 24일부터 회사채와 기업 어음에 투입했으며, 회사채와 기업 어음 매입의 한도를 기존 8조 원에서 16조 원으로 2배 확대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이하 PF)이란 특정한 프로젝트로부터 미래에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담보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을 말한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가 발행한 기업 어음을 매입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PF ABCP 관련 시장 불안의 안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PF ABCP 차환의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에는 한국증권금융에서 3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며, 적격 담보 대상으로 △국채 △공공기관채 △은행채 등을 포함했다. 공공기관채와 은행채의 대규모 발행이 계속 이어지면 다른 신용채권 수요를 위축시키는 문제가 생긴다. 은행채가 적격담보증권에 포함되면 보유 중인 은행채를 담보로 한국은행에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의 규모만 50조 원으로 추산되며, 이에 더해 지난달 5대 금융지주에서 올해 연말까지 95조 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약속받았다. 이를 종합하면 금융당국에서 투입됐거나 투입 예정인 돈만 약 150조 원에 달한다. 

정부는 앞서 언급한 대책 이외에도 상황별로 여러 방향을 고려하고 있으며, 그중 채권 시장을 가장 주시한다고 밝혔다. 채권 시장의 어려움은 주식 시장 등 다른 시장으로의 전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고랜드 사태 직후, 우리나라 전반 채권 가치가 내려가면서 대한민국 국고채의 금리가 10년 내 최고치인 4%까지 치솟기도 했다. 채권 시장 경색으로 주요 기업의 회사채 발행 및 차환이 어려워지면 단기적으로 자산의 현금화를 어렵게 만드는 유동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고금리 지속 상황에서 유동성 문제는 중소형 증권사, 건설사의 부실화를 가속화해 문제의 복잡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는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식 시장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한국 채권 시장의 추락에 책임이 있는 강원도는 지급보증 거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자체 보증 ABCP에 대해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급 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회사채와 단기 자금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만큼 자금 경색 불안 완화에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채권 시장의 신용 회복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기존 금융당국의 노력 외에도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개입과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강원도에서 구체적인 변제 일정과 함께 보증 채무를 확실히 했고, 중앙정부에서도 고강도 대책을 발표한 만큼 채권, 부동산 등의 금융 시장이 속히 회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