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인플레이션·전쟁, 퍼펙트 스톰의 전초
경기침체·인플레이션·전쟁, 퍼펙트 스톰의 전초
  • 이재현, 탁영채 기자
  • 승인 2022.09.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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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되는 경제 지표와 경기 침체 우려(출처: 한국경제신문)
▲악화되는 경제 지표와 경기 침체 우려(출처: 한국경제신문)

대한민국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닥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퍼펙트 스톰은 미국의 언론인 겸 작가인 세바스찬 융거의 소설 제목으로 처음 쓰였으며, 기상현상의 조합으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폭풍을 일컫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발생 후, 누비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경제 위기를 ‘두 개 이상의 악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제에 파괴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현상’으로 비유하며 널리 쓰이게 됐다. 올해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전쟁이 겹치며 세계 경제에 초대형 복합 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재화나 임금 등 물가 수준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는 경제 상태를 의미한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양적완화란 중앙은행이나 이에 준하는 통화 발권 기관이 화폐를 발행한 후 그 화폐로 국채나 민간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매입해 통화량을 늘리는 정책을 말한다. 미국은 재작년 3월,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그해에만 3조 6,000억 달러(약 4,700조 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시장에 공급했다. 이런 양적완화 정책은 중앙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전달함으로써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할 수 있다. 초기에는 양적완화 정책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을 이끌었지만, 현재는 물가의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고 있다. 

화폐가 과잉 공급되면 자산시장의 인플레이션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것은 초저금리 시대마다 있었던 현상으로, 전반적인 물가의 상승을 유도한다고 볼 수 없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은 공급망 혼란이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 2월 24일 시작한 러시아의 침공은 약 190일을 넘어섰다. 특히 이 전쟁은 ‘세계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우크라이나와 세계 최대 밀 수출국 러시아의 밀 수출에 큰 지장을 줬고, 세계 식량 공급에 악영향을 끼쳤다. 전쟁 직후 각국의 경제 기관들은 올 한 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우크라이나의 경우 35% 역성장, 러시아는 8.5% 역성장을 전망했다. 전쟁은 두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식량 수급과 원자재 공급에 전방위적 충격을 줬다. 

미국과 중국의 냉전 역시 세계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은 핵심 기술과 금융 △한국·일본·독일 등은 핵심 장비와 부품과 재료 △중국은 제조를 통해 완제품을 시장에 공급해왔다. 미국이 금융위기로 주춤하는 사이, 중국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따라잡았고, ‘중국제조 2025’ 전략으로 첨단산업에서도 미국의 역할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은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이 구축한 가치 사슬 파괴를 목표로 세계 공급망을 재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쟁 이후 전년 동월 8% 상승하며 40여 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세계적인 공급망 혼란에 따라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종식 기류에 따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인플레이션 감축을 위해 고강도 금리 인상 정책을 펴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 △0.25%p △0.5%p △0.75%p △0.75%p 순으로 잇달아 올렸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0.25%p △0.25%p △0.5%p씩 올리며 대응했다. 한국은행의 선제 대응으로 미국보다 상대적으로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파르지 않음에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1위인 만큼 이런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달갑지 않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함께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견디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주요 IT 기업을 필두로 사회 구성원의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 압박이 거세졌다. 자칫하다간 물가와 임금이 순환 상승하는 임금·물가 상승 소용돌이(Wage-Price Spiral)의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물가와 임금 사이에 발생하는 이런 악순환은 고물가를 고착화할 수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을 억제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경제가 직면한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주체 고통 분담 △생산성 향상 △감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수습을 위한 막대한 팬데믹 머니 △공급망 재편 및 혼란 △임금·물가 상승 소용돌이 등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올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신중하게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 우리 모두 퍼펙트 스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