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손해 … 한전 역대 최악 적자
팔수록 손해 … 한전 역대 최악 적자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2.06.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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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마당에서 SMP 상한제 도입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출처: 에너지타임즈)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앞마당에서 SMP 상한제 도입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출처: 에너지타임즈)

1982년 설립된 이후 오랜 세월 국내의 전력 공급을 담당해온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올해 사상 최악의 실적 쇼크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전은 설립 이래 최대인 5조 8천억 원 대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러나 올해는 1분기에만 작년 한 해 영업손실을 넘어서는 7조 8천억 원의 적자가 났다. 현 추세라면 올 한 해 적자가 한전 창사 이후 60년간 벌어온 수익을 넘어서는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한전의 전력 구매비가 급등한 데 비해 판매 단가 인상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이고,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전력을 공급한다.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 도매가격은 계통한계가격(System Marginal Payment, SMP)으로 결정되며, SMP는 전력 생산에 참여한 발전기 중 발전 가격이 가장 비싼 발전기의 연료비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이 같은 가격 결정 구조로 발전 단가가 가장 높은 액화천연가스(이하 LNG) 발전기의 발전 비용이 사실상 SMP를 결정한다.

지난달 20일 기준 동북아시아의 LNG 현물가격은 MMBtu(25만kcal 에너지를 내는 가스양)당 21.93달러로 지난해 대비 18%, 2020년 대비 398%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완화 이후 연료 수요 회복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연료비가 급등한 탓이다. 외부적 요인 외에도 지난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며 원자력 발전 비중을 낮춘 것이 적자 규모를 키웠다는 주장도 나온다. 원전 비중을 낮추는 대신 발전 단가가 높은 LNG와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면서 연료비 급등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 전력 도매가격을 결정하는 LNG 가격이 오름세를 지속하면서 올해 1분기 SMP는 지난해(76.5원)의 두 배 이상인 kWh당 180.5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동기 전력 판매 단가는 kWh당 107.8원에서 110.4원으로 소폭 인상되는 데 그쳤다. 전력 판매 단가에 연료비 등락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전력 시장의 근본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정부는 연료비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고자 2020년 12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전력 판매 단가는 △기준연료비 △연료비 조정요금 △기후환경요금 등으로 구성된다. 연료비 연동제란, 연료비 조정요금에 직전 분기의 연료비 등락을 반영하는 것으로 직전 분기 대비 kWh당 최대 3원, 전년도 대비 최대 5원 조정이 가능하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한전은 연료비 상승을 고려해 6차례 전기요금 인상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물가 안정을 이유로 한 차례만 받아들여 전기요금은 거의 동결이다. 정부가 연료비 연동제의 정상화에 연이어 제동을 걸면서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의 재정난 악화를 막기 위해 지난달 24일 ‘전력 시장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의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다. 이 제도는 직전 3개월의 SMP 평균이 과거 10년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에 해당할 경우, 한 달간 SMP가 10년 가중평균 SMP의 1.25배 수준인 상한가격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국민 부담이 가중되고, 물가가 불안정해질 우려가 있어 전력 판매 단가 대신 도매가격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다.

정부가 예고한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를 두고 한전과 민간 발전사 사이에선 희비가 갈리고 있다. 한전은 연료비가 급등하더라도 평년 수준의 도매가격으로 전력을 매입할 수 있으므로 전력 구매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반면, 원래보다 낮은 가격에 전력을 판매해야 하는 민간 발전사들은 “발전사의 이익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반시장적 조치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민간 발전사들이 전력 생산 시 드는 연료비가 SMP 상한가격보다 높은 경우 발생한 손실을 보상하는 대안을 발표했지만, 그마저도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발전기 연료비도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계산하므로 정부가 보상해주더라도 손해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며 대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전국 대학의 에너지 전공 교수들로 구성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 온기운 공동 대표는 “SMP 상한제는 궁여지책일 뿐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다”라며 “일차적으로는 전기요금을 올려야 해결되는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연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지만,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탓에 현재 한전은 사상 최악의 재정난을 겪고 있다. 지난 2020년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도 유명무실해졌고, 최근 내놓은 긴급정산상한가격 제도 역시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 공기업인 한전의 적자는 결국 국민이 감당해야 하므로 미봉책 대신 전력 시장의 가격 결정 구조 개편 등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