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과 허상의 경계, 스테이블 코인
패권과 허상의 경계, 스테이블 코인
  • 탁영채 기자
  • 승인 2022.06.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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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코인과 루나 코인의 작동 원리(출처: 뉴스핌)
▲테라 코인과 루나 코인의 작동 원리(출처: 뉴스핌)

스테이블 코인은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경제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스테이블 코인의 개념은 멀게만 느껴진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스테이블 코인은 최근 테라-루나 사태로 논란의 중심이 된 테라 코인(이하 테라)이다. 테라는 티몬 창업자 신형성 대표와 애플 엔지니어 출신 권도형 대표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에서 발행된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며, 루나 코인(이하 루나)은 테라의 가치를 떠받치는 데 이용되는 자매 코인이다. 테라는 한때 암호화폐 시가총액 410억 달러(약 52조 원)의 평가를 받으며, 세계 암호화폐 시가총액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지만, 99.9% 이상 폭락하며 사실상 백지가 됐다.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의 가격이 다른 화폐에 고정돼 있어 가격 변동성이 낮은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를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높은 가격 변동성 때문인데 스테이블 코인은 이런 암호화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됐다. 법정 화폐와 코인 가치의 비율을 고정하는 것을 ‘페깅’이라고 한다. 테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에 1:1의 비율로 페깅돼 가격 안정성을 높이 평가받는다. 

스테이블 코인은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나 안전 자산인 미국 달러를 담보로 하거나 알고리즘을 이용해 안전성을 확보한다. 테라는 담보 대신 알고리즘을 이용해 안전성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했다. 테라가 공급이 과잉돼 테라 가격이 기준가 이하로 하락한다면, 누군가 차익 거래를 위해 테라를 구매해 루나와 교환할 것이다. 시스템에서는 교환된 테라를 소각시켜 테라의 가치를 높여 가격을 복귀시키고 단기적으로 루나의 공급량이 증가한다. 수요가 과잉되는 경우 정확히 반대의 과정이 일어나 테라의 가격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구조다. 이런 알고리즘에 따라 서로를 떠받치며 맞물려 있는 두 코인의 통화량을 공급과 소각으로 적절히 조절해 1테라를 1달러의 가치로 유지되도록 한다. 

암호화폐가 실질적인 가치를 가진다기보다는 단기 투자로 활용되는 만큼 사회구성원이 암호화폐를 사용하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이 동원된다. 테라와 루나는 가치를 유지하거나 지속해서 상승시키기 위해 이자를 주는 방법을 채택했다. 테라는 코인 보유자들에게 20%에 가까운 이자를 약속했고 테라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알고리즘에 따라 루나는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를 봤다. 이런 방식을 통해 루나의 시가총액은 약 52조 원까지 불어나며 한국산 코인의 대표 주자로 올라섰다. 

하지만 테라와 루나의 시가총액이 커지면서 많은 투자자가 테라를 루나로 교환할 수 없을 것이란 믿음이 번져 테라의 매도세가 몰렸다. 알고리즘에 의해 루나의 유통량 역시 늘어나면서 루나에 대한 불신이 커졌고, 테라를 매도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결국 페깅이 느슨해져 1:1 교환 비율을 유지하지 못했고, 이는 폭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50조 원의 가치가 불과 4일 만에 증발하면서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를 비롯한 수많은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루나 코인이 퇴출당했다. 

테라와 루나는 꽤 큰 규모를 가진 세계적인 스테이블 코인이었고 단기간에 큰 급락을 겪으며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이번 사태로 세계 각국에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작동 방식이 투자 은행과 다를 게 없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은행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은 그간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 패권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도 지난 5월 10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테라-루나 사태를 직접 언급하며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입장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가장 성공적인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의 몰락으로 담보 없이 페깅을 한다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발상 자체가 한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스테이블 코인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알고리즘 기반 외에도 실물 자산이나 다른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이 있다. 테더나 바이낸스와 같이 테라보다 큰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스테이블 코인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 공간이 본격적으로 실생활에 적용되고 나면 스테이블 코인의 실용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존재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디지털 달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 ‘관망’에서 ‘가장 시급함(Highest Urgency)’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이다. 백악관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될 경우 중앙은행(CBDC)이 이에 대해 개발 및 연구하도록 명령했다. 법정 화폐 시장에서 달러 패권을 가진 미국이 스테이블 코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 대응하기 시작한 만큼, 스테이블 코인의 향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