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제 감성입니다만 ···
이게 제 감성입니다만 ···
  • 안윤겸 기자
  • 승인 2021.12.14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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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 등장한 배우 유아인의 존재감에 이끌려 오랜만에 그의 수상소감을 찾아봤다. 특히 화제가 됐던 2015년 ‘SBS 연기대상’에서의 수상소감은 유아인만의 감성과 멋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가 배우로서 마주해온 성찰과 고뇌를 담은 소감은 당시 대중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솔직하고 독특한 소감에 ‘매력 있다’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미친 사람 같다’, ‘느끼하다’, ‘오글거린다’, ‘허세를 부린다’ 등 부정적인 반응이 상당히 많았다. 독특한 손짓과 표정, 솔직한 생각과 개성 있는 단어 선택이 그들에게 ‘오글거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근래 들어 누군가의 개성과 감성이 웃음거리로 전락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은 지난겨울부터 한동안 ‘지디병’이라는 별명으로 대중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공연 중 음악에 취해 특이한 몸짓을 취하고 감성을 표현하는 표정이 지드래곤을 어쭙잖게 따라하는 것 같다며 놀림당한 것이다. 이찬혁의 무대와 유아인의 수상소감은 오랫동안 여러 커뮤니티에서 ‘항마력 테스트’ 등의 밈으로 쓰이며 조롱당했다.
인터넷 밈은 웃음과 재미를 기반으로 퍼져 나간다. 밈을 통해 문화의 흐름이 바뀌기도 하고 그 대상은 화제의 주인공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밈이 조롱으로 번지는 것이다. 밈의 대상은 한순간에 집단적인 조롱의 중심에 선다. 대상의 모습에 대한 놀림의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악의로 밈을 즐기지는 않기 때문에, 조롱 문화를 지적하면 오히려 ‘진지충’이 된다. 웃자고 한 말에 예민하게 반응한 ‘진지충’들에게는 또 다른 조롱이 시작된다.
감성과 개성에 대한 조롱 문화는 대중매체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팽배하다. 책을 읽다 울면 놀림거리가 되고, 감성을 SNS 등에 전시하는 이들에게는 오글거린다며 야유를 던진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분위기를 잡고 따뜻한 말을 건네면 질색하며 놀리기 시작한다. 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는 열정과 진심을 담아 그룹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가 그룹 내에서 몇 년째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감성 대신 이성적이고 담백한 모습만을 추구하면서도 진지한 사유와 지성 대신 가볍고 자극적인 것만을 찾는 모순적인 행태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요즘 사람들은 감성을 배제한 냉철한 표현법으로 진지한 생각 대신 가벼운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을 ‘쿨하다’고 정의하며, ‘쿨한 사람’을 선망한다. 많은 사람이 쉽게 타인의 감성을 평가하고, 감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이들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솔직하고 진지한 사유의 결과물도 감수성이 묻어있으면 비웃기 바쁘다. 이런 사회의 평가 때문에, 사람이라면 모두 감수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의 감성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며 검열하게 만든다.
우리는 세상의 조롱에 겁먹어 소중한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가고 있다. 감성은 ‘오글거리는 것’이 됐고, 지성은 ‘허세’가 됐다. 개성들이 짓밟혀 세상의 감정은 점점 빈곤해지고 있다. 우리는 ‘오글거림’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가장 나다운 것을, 그리고 진솔함을 되찾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