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싸울까
우리는 왜 싸울까
  • 문병필 기자
  • 승인 2021.05.18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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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다양한 갈등에 휩싸여있다. 경기도가 공개한 사회 갈등과 관련한 경기도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 갈등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느냐?’라는 질문에 ‘심각하다’라는 응답이 89%로 나왔다. 이처럼 빈부 갈등, 세대 갈등, 성별 갈등 그리고 이념 갈등까지 다양하게 나뉘는 분파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 진영과 타협하고 투쟁하는 것은 인류 역사 내내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첨예한 의견 대립이 과거엔 없었던 것 같다. 미화된 과거 때문이 아니라 확실한 지표가 있다. 이념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문에 17년도에는 15%의 사람들이 심각하다고 대답했지만, 2년 후인 19년도 조사에서는 55%가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갈등이 심화하고 부각되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많은 사람이 무리 지어 부도덕한 일을 할 때 그들은 더더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거나,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정 단체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할 때 구성원들 또한 모두 비도덕적일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않다. 집단은 충동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억제할 수 있는 이성과 다른 단체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개개인보다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발현되는 이기적 충동보다 그것이 집단으로 발생할 때 구성원들은 이기심을 더 정당하다고 느낀다. 따라서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개인을 변화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집단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파시즘은 대중의 집단적인 이기심을 이용해 개인을 계급, 민족, 국민으로 나눠 이념적 목적을 달성했다. 이렇게 집단의 이기심을 통해 만들어낸 세계적 비극이 심각했기에, 파시즘을 아래부터의 독재, 대중 독재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을 막을 수 있었던 건 타협과 협상이 아닌, 정치적 해결이었다.
하지만 나는 정치적 해결에 앞서 집단의 부도덕성을 먼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갈등을 줄이고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단체의 도덕적 책무와 정부의 사전예방,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이는 더 높은 수준의 사회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인간에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비해 도덕적 이성이 부족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성이 기술 수준을 따라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만일 이성적인 성숙함을 뒤로한 채 기술적인 진보만을 꿈꾼다면, 재능과 지식이 커질수록 그들은 더 가련한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