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멀티버시티(Multi-versity)가 아니라 유니버시티(Uni-versity)라고 부르는 어원을 살펴보면 애초 사제 간을 기초로 한 단일체였기 때문이다. University는 라틴어 universus의 파생어인데, 이는 ‘하나의’라는 수사 uni와 ‘향하다’라는 동사 verto의 합성어다. 따라서 universus는 ‘하나로 향하는’의 뜻이다. 최초의 대학은 1088년에 창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로 알려져 있으며, 서구 대학의 역사는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시대의 대학은 지금처럼 최고 권위의 교육 및 연구 기관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자치단체였다. 즉, 교수와 학생들의 연합단체 혹은 단일 운명공동체로 불린 것이다. 사회 속에서 대학의 위상과 역할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변모해왔으며, 현재 우리나라 대학들을 포함한 많은 대학이 도입하고 있는 현대 미국식 학제는 학과제(Department)를 기반으로 사회구성원의 최상위 고등교육과 정부와 산업체의 수요에 부응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주 역할로 해왔다.
우리대학의 특수성은 행정에 있어서 민주적인 절차와 구성원들 간의 합의보다 더 높은 수준의 의제설정을 요구한다. 이공계 중심 대학, 지방 소재 대학의 특이성을 차치하더라도 제철보국의 도전정신을 정신적인 유산과 모태로 한 특수성은 때때로 ‘걸어보지 못한 길’로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대학의 집행부는 이런 특수성에 기반한 포스텍 포지셔닝을 위한 비전 설정에 있어서 여러 교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며, 대학의 장기적 발전을 이룰 방안이 무엇인지 숙고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한 모험을 위한 도약을 언제 어떤 형태로 내디뎌야 하는지에 대한 의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런 장기적 방향성이 담보됐을 때, 교내 구성원들의 합의와 성원에 기반한 총장과 집행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행정적인 측면에서 우리대학 건학 및 개교 초기를 살펴보자면, 일반 사학들과 대비되는 큰 특징으로 통상 재단이 행사할 만한 많은 권한을 위임받은 총장(당시 학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통상 총장이 행사할 만한 권한들을 상당 위임받은 학과의 수장인 주임교수의 역할을 들 수 있다. 이제와서는 총장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화해 리더십을 기반으로 한 동력이 감쇠했으며, 주임교수들의 리더십은 학과에 따라 제각각 다르나 구심점이 사라져가거나 제 역할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대학은 대한민국 대학에 있어 리더이자 첨병이며 테스트베드이다. 최근 제주도에서의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논의의 테스트베드가 제주도라면, 여러 가지 새로운 대학 모델에 대한 테스트베드로서의 우리대학의 역할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 우리나라 정서에는 생소한 기여 입학제에 대한 테스트베드로서 우리대학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과 현실성을 떠나서 이런 여러 논의가 교내에서 사라지고, 희망과 열정이 옅어지는 것이 아쉽다.
최근 들어 가치창출, 산학일체, 하계 사회 경험 프로그램(SES, Summer Experience in Society)등이 성공적으로 잘 도입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의제 설정이 필요하며 그에 따른 구성원들의 파토스적인 고양과 새로운 문화의 창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순수기초과학의 경쟁력 제고와 수월성 확보를 위해 연구소와 대학이 결합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과 우리대학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스마트 밸리’에 대한 구상은 반갑기 그지없으며 새로운 구심점이 돼 우리대학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델이 되기를 기원한다.
재단 이사회와 학교의 모든 구성원 그리고 졸업생들을 포함하는 우리대학은 그 어원처럼 ‘유니버시티’적인 단일 운명공동체로서 목표하는 높은 이상에 따르는 교육과 연구를 효과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과 모델 개발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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