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배려의 문화
존중과 배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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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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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사회의 보편 가치는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은 시민에게 그리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자유, 평등, 정의를 추구하며, 인간의 본성이나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는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권리를 누리며 의무를 다할 때 우리 사회는 유지된다. 개인의 행복 추구권은 인간의 기본 권리로 보장돼야 하나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불평등 요소, 즉 성, 피부색,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정치적 좌표, 성적 지향성, 신체장애 여부, 개인이 축적한 부의 정도, 소득 규모, 직업의 안정성 등 너무나도 다양한 측면에서 불편, 부당한 대우를 받고 행복 추구권을 제한받는 개인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강자와 약자, 혜택을 많이 누리는 자와 기회를 박탈당한 자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 건강한 사회일수록 이런 차이가 작고, 그 차이를 극복할 기회도 많이 주어진다. 
대학 구성원은 크게 학생과 직원, 교수로 나눌 수 있으며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지고 있다. 충분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느냐와 주어진 권리를 남용하지 않으냐의 문제, 과도한 의무를 지고 있느냐와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느냐의 문제는 구성원 간의 긴장 요소로 늘 잠재돼 있는데,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법은 종종 요원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권리를 보장받고 의무를 다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갈 때 조직은 지속 가능하고 개인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갈등으로 충돌하고 반목하여,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하지 않고 정해진 파이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려고만 하는 조직은 지속할 수 없다. 
대학이 다른 영리 추구 조직과 다른 점은 교육과 연구가 조직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특정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노동과는 달리 교육과 연구는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런 추가 노력이 가능한 이유는 대학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교육과 연구에 있음을 공감하고 학생, 직원, 교수가 에너지를 쏟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생은 교양교육과 전공교육, 연구 참여 등을 통해 연구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쌓고, 대학원생은 특정 주제의 연구, 실험, 논문 작성 및 발표 등을 통해 독립적인 연구자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연구비를 확보하고 논문, 특허, 사업화 등을 통해 창출된 가치로 사회에 공헌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직원은 대학의 발전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기획, 관리 시스템을 실현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로 대표되는 직업 환경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다 주고 있다. 의도했던 바와 달리 고용의 위축, 소득 감소 등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으나 큰 흐름은 일과 삶의 균형을 전제로 노동 효율의 향상을 지향함과 동시에 개인의 행복 추구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제 더는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전체의 성과를 쥐어짜는 체계로는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없고, 구성원의 만족도 보장할 수 없으며, 성과의 크기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뀐 시대에 대학의 시스템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우리대학은 조직의 성장과 개인 행복 추구권을 동시에 보장하는 건강한 조직인가? 대학원생의 연구조교 업무가 노동인지, 직원의 업무 범위,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교수의 교육, 연구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권리가 보장돼야 하는지 등 여러 의제가 토론의 장에 나오고 있다. 건강한 조직은 정보의 공유와 소통을 통해 문제를 가시화하고 해결책을 찾는다. 이때 중요한 전제는 현상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 약자에 대한 보호 등이 돼야 하며, 구성원 사이의 상호 존중, 배려가 필수적이다.
전 세계의 우수한 고등교육 기관들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의제들을 지속해서 던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전방위적인 변화는 모든 학문 분야에 적용돼 이전에 풀지 못했던 난제들을 엄청난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우리대학 또한 이런 흐름에 합류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시스템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려면 집중도를 높여 작업의 질이 향상돼야 한다. 학문 간의 융합은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다. 건강한 개인이 없이 건강한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활발한 소통으로 잠재적인 갈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조직만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다. 우리대학이 이런 변화의 흐름에 앞장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