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cm의 낭떠러지
아무리 요즘 인터넷 기사 제목들이 유별나다고들 하지만, 예전에 어떤 연예 기사 제목을 보고는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모 여가수, 30cm 아래로 ‘추락’ 응급실 직행>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누리꾼들은 30cm 높이에 웬 ‘추락’이라는 단어를 붙이느냐며 기사의 과장된 표현을 꼬집었다. 필자도 이 기사를 처음 봤을 당시에는 참 표현이 우습다며 그저 웃고 넘어갔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30cm 아래로 추락’이라는 수식어가 부자연스럽지 않을 사람들이 있다. 비장애인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만큼 가벼운 30cm의 높이가, 장애인들에게는 낭떠러지로 느껴질 만큼 힘든 장애물이다.필자가 미국에 갔을 때 어느 시골 마을의 야외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식탁이 하나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는 없고, 탁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식탁이었다. 처음에는 의자가 고장 난 것일까 생각했으나 그 식탁을 자세히 보니, 옆면에 작은 장애인 표지판이 붙여져 있었다. 그것은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해놓은 식탁이었다. 대여섯 개의 식탁 중에 의자가 없는 장애인용 식탁이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이 괜스레 흐뭇해졌다. 이외에도 미국에서는 곳곳에, 공공장소는 물론 교외 변두리에까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장애인 복지가 보편화되어 있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장애인들이 거리낌 없이 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요새는 공공장소에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장애인 버스도 운영되고 있지만, 일상생활 속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장애인 복지가 잘 실현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의자가 없는 식탁에 의아해한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작은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비마이너(BeMinor)’라는 장애인 인터넷 신문의 한 기사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전체 복지 재정 중 장애인복지 예산은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 인구수(2,517,312명, 2010년도 기준)는 우리나라 인구수(47,554,074명, 2010년도 기준)의 5%를 차지하는데, 이에 비해 복지 예산이 너무 적게 편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장애인들에게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코웃음 치는 30cm의 높이가, 그들에게는 낭떠러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도덕에 따라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장애인 복지에 대해서는 남의 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으레 얘기하듯 우리도 불의의 사건으로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며,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비장애인과 같이 불편함 없이 자유로운 사회 활동이 가능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사회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0cm의 낭떠러지를 완곡한 언덕길로 만들어주어 그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대학의 장애인 학우들은 대체로 학교 복지에 만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종종 78계단을 힘겹게 오르면서 이 계단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되었다며 투정을 부리곤 했는데, 장애인들에게는 꼭 그런 것은 아닌가 보다. 파스칼이 불행의 원인은 늘 자기 자신에 있다고 했는데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더 불평불만이 많으니,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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