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보면 ‘용건’ 있는 ‘안부’라는 말은 모순을 가졌다. ‘안부’는 상대방이 편안히 지내는지에 대한 물음을 뜻하는 것에 반해 ‘용건’은 본인과 관련된 특정한 목적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부탁이 있거나 전할 말이 있어서 하는 전화에 익숙해져서인지 이 어구가 어색하지 않다. 전화하면서 오롯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나의 말을 전달하는 것에 더 집중할 때가 많아져, 도리어 ‘그냥’이라는 이유로 걸려온 전화에 머쓱함을 느끼게 되었다. 용건 없는 안부 전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에는 관심,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다. 서로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바쁠 것이라는 생각으로 벽을 만들어 나를 가두고선, 나의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사랑을 표현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나의 갑작스런 연락에 ‘지금은 OO중입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거절 버튼을 누를까 두려워서, 저 사람은 최근 통화 목록에서 한참 내려도 보이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라서, 나는 나도 모르게 한때 가깝게 지냈다고 생각한 사람마저도 그냥 안부 전화를 거는 것이 어색해져 버렸다.
그냥 건 전화는 어색할 수도 있다. 두서없이 흘러가는 알맹이 없는 대화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무작정 걸려왔던 순수하고 반가운 목소리는 나에게 향한 사랑이자 위로였듯,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따뜻함이 될 수 있다. 나는 식탁을 정리하고 TV를 끄면서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통의 전화를 걸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으로,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내 진심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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