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찾은 깊은 산골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독들이(나중에 2700개란 설명을 들었다.) 조금은 나른하게 정렬되어 있었다. 약간은 서먹한 돈연 스님과의 첫 만남은 물에 씻은 묵은 김치와 청국장(이는 그 곳에서 새로이 개발한 분말로 된 것임을 알고 놀랐었다.), 그리고 몇 가지의 나물을 곁들인 점심을 투박한(?) 김칫독 뚜껑에 담아 먹으면서, 조금씩 편해지고 있었다. 또한 처음부터 반말로 맞아주시던 안주인이신 첼리스트 도완녀님의 격의없는 식사로의 초대와 더 먹으라는 권함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공장 2층에 자리잡은 더없이 전망 좋은 손님방(?)으로 초대를 받아 차를 마시면서, 몇 시간 동안 돈연 스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막연히 알기로 돈연 스님은 젊은 시절 조계종에서 많은 공부를 하셨던 분이다. 그래서일까? 스님은 공부를 그만두게 되신 동기로써, 80년 광주에 계시면서 느끼셨던 무력감, 성직자로서 대중이 힘들여 일한 대가로 벌어 가져다 준 곡식으로 편히 생활하신 것에 대한 불편함, 그래서 보다 어려운 사람들과의 삶을 위해 이 곳에 정착하신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셨다. 이 곳에 정착하시면서 콩을 메주로, 메주를 간장과 된장으로 만들면서 늘어가는 부가가치를 설명하셨다. 요즈음에는 새로이 분말로 된 된장 청국장 등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는, 지난 20여 년의 생활을 차근차근 이야기하시며, 이제서야 그 동안 가지고 있던 '노동에의 갈증'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직 매일매일 나의 일에 목말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말에 부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갈증을 풀려고 진정 노력해 본 적이 있는가? 세계의 누구와도 경쟁한다는 포항공대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갈증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끝없이 이어져 가는 오후였다.
3시간 남짓한 이야기로 스님의 경험과 생각을 소화하기란 나의 작은 그릇으로는 불가능한 것이고, 더 이상 그 분의 시간을 뺏기에도 송구하다고 느낄 때 쯤 스님께서 한 마디 하셨다. "이 곳의 자연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라고. 돈연 스님과 도연녀님, 그리고 세 자녀와의 만남, 그리고 그 곳 사람들과의 만남, 그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 분의 말씀을 내가 그 날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정말 많은 사람과 만난다. 첫번째 만남은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커서는 배우자와 자식과의 만남이, 교수로서는 학생들과의 만남이,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스쳐 지나가고 있을는지? 그리고, 그 소중한 만남을 얼마나 소중히 가꾸고 있는지?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문제들을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아름다운 것이란 것을 깨우침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가지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한밤중의 운전을 편히 할 수 있었다.
요즈음 한국 축구팀을 보면 감독과 선수들의 만남이 그리고 선수들과 선수들의 만남이 지난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진 것 같다. 우리 축구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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