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5일부터 12월 2일까지 부산에서 열린 ‘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이하 INC)’에 유엔 회원국 178개국의 정부대표단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2022년 3월부터 진행돼 온 5번째 INC로 올해 유엔 플라스틱 협약 체결을 위한 초안을 결정하는 마지막 협상 회의였다. 올해 예정된 전권 외교 회의를 위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31개 국제 기구, 산업계·시민단체·학계 등 이해관계자 3,000여 명이 모였고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며 힘을 합쳤다. 하지만 예상 종료일보다 하루를 넘긴 시간까지 협상을 계속했으나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무산됐다.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INC 의장은 마지막 전체 회의에서 “쟁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라며 “추후 5차 협상위원회를 재개해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전반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
오늘날 전 세계가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있다. OECD의 ‘2022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약 9%의 플라스틱만이 재활용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바다로 흘러 들어가 분해돼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이렇게 떠다니는 미세플라스틱 조각은 171조 개에 달하며 그 무게만 230만 톤으로 추정된다. 미세플라스틱을 해양생물이 섭취하면 다양한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으며 전문가들 또한 이를 먹는 인간에게도 영향이 간다고 우려한다. 플라스틱 생산량은 이미 2019년에 2000년 생산량인 2억 4,300만 톤의 두 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했으며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을 합치면 90억 톤이 넘는다. 그로 인해 플라스틱 생산의 제한에 대한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제5차 INC의 논의점
이번 협상에서는 △원료 물질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와 플라스틱 생산 감축 △유해 화학물질 퇴출 △재원 마련의 세 쟁점을 다뤘다. 그중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해 산유국과 비산유국 간 첨예한 논쟁이 펼쳐졌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 석유 생산국이 주도하는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 측은 현실성이 없는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보다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고 폐기물 관리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EU를 중심으로 구성된 ‘플라스틱 국제협약 우호국 연합(이하 HAC)’은 재활용만으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생산량 자체를 줄여나가고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큰 축을 이루는 두 연합이 석유화학 산업과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대립함에 따라 협상은 진전되지 않았다. 특히 HAC 소속국이자 석유화학 산업을 핵심적인 산업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 정부의 중재자적 역할이 기대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이는 한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4일 기자간담회에서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
한국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협상이 소득 없이 끝난 것에 대해 시민사회의 요구도 거세다. 국내외 16개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플뿌리연대는 지난달 1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정부의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포함하는 협약에 참여를 촉구했다. 또한 그린피스 플라스틱 운동가 김나라 씨는 “이번 협약에 참석했던 회원국, 국내외 시민사회, 그리고 강력한 협약을 기대했던 세계 시민을 실망하게 했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 협상이 종료되기 반나절 전쯤 발표된 INC 의장의 제5차 비문서 또한 시민사회에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비문서에는 당초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플라스틱 협약의 목적을 대표하는 제1조 목적의 수위가 낮아졌을 뿐 아니라 플라스틱 생산 및 공급에 대한 제6조 공급 조항이 삭제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이번 회의는 지속 가능한 플라스틱 제품 디자인 등과 관련해 국가별로 자율 규제를 하도록 하는 등 플라스틱 협약의 핵심적인 부분 이외의 논의 사항에 대해서는 절충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 또한 존재한다.
INC가 남긴 것
비록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번 회의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쟁점들에 대해서는 다음 협상이 필수 불가결이지만, 플라스틱 문제를 둘러싸고 전 세계가 모였다는 점에서 이번 회의는 의의가 있다. 물론 세계 플라스틱 오염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만큼,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플라스틱 협약을 갈무리 짓지 못했지만, 이른 시일 내에 추가적인 협상을 통해 플라스틱 협약을 결론지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