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만 가는 스펙 부담, 늦어지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
늘어만 가는 스펙 부담, 늦어지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
  • 오유진, 정혜정 기자
  • 승인 2024.10.3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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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많은 구직자들이 참여한 모습(출처: 연합뉴스)
▲지난해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많은 구직자들이 참여한 모습(출처: 연합뉴스)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취업 전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수많은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이 사회 진출을 위해 치열한 ‘스펙 쌓기’ 경쟁에 내몰리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이들의 취업 준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재단법인 ‘교육의봄’에서 올해 2월부터 약 4개월 동안 국내 1,000대 기업 중 169곳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2014년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봉사 등 학내외 활동 △자격증 △공모전 수상 경력 등 취업 시 요구되는 스펙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청년들의 스펙 쌓기 비용은 매달 44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듯 충분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요구되기에 휴학을 하고 스펙 쌓기에 집중하는 대학생도 생겨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이런 과도한 스펙 경쟁 속에서 청년들의 첫 직장 입사 연령은 평균 31세에 이른다. 이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소모되는 청년들의 기회비용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포브스에서 OECD 발표 자료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청년들의 오버 스펙 인력 비율이 OECD 국가 중 1위로 나타났다. 이는 과도한 스펙 쌓기가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로 이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이처럼 많은 스펙이 실무에 얼마나 도움 되고 있는가’이다. 2020년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신규 입사자 34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입사 후 업무 수행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스펙 항목은 매우 적었다. 스펙과 업무 수행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에 △해외 경험(1.7%) △공모전 및 프로젝트(1.1%) △어학 점수(0.6%) △봉사활동(0.6%) △수상 경험(0.3%)으로 대부분의 스펙이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재 기업에서 요구하는 대부분의 스펙이 실무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5월부터 교육의봄은 ‘스펙 다이어트 캠페인’을 통해 기업들이 직무와 무관한 스펙을 채용 기준에서 배제하거나 완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교육의봄은 2020년 9월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인 승인을 받아 창립된 기관으로, △기업 채용 현황 탐색 포럼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법제화 운동 △‘좋은 채용 기업 찾기’ 캠페인 △‘이웃집위인 찾기’ 캠페인 등을 실시하며 청년들의 취업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올바른 채용 문화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출신 학교에 따른 차별을 줄이고 실력에 기반한 평등한 채용 문화를 확산해 우리 교육에 봄을 이끌고자 한다. 이런 변화는 청년 개인의 부담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청년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의봄 관계자는 “채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펙을 줄여주는 노력은 취준생들과 초중고 대학생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의미가 있다”라며 “기업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과도한 스펙 쌓기의 원인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가진 스펙 기재란에 대한 부담 △채용공고의 불명확한 요건 제시로 인한 무분별한 스펙 준비 △저조한 대학 내 진로 취업 교육 수준 등이 있다. 특히 입사지원서의 스펙 기재란에 대해 느끼는 중요도가 인사담당자보다 취준생의 경우가 훨씬 높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교육의봄에서 취준생과 인사담당자 각 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턴 경험, 영어 성적 등의 스펙 항목의 중요도에 대해 취준생이 인사담당자보다 평균적으로 2배가량 높게 평가했다. 이 외에도 노동에 대한 수급이 불일치하는 등의 문제가 원인이 된다. 늘어난 고학력·고스펙 취준생에 비해, 그들이 만족할 만한 일자리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소수의 대기업 및 인기 중소기업으로 구직자들의 지원이 쏠리면서 과도한 경쟁이 벌어진다. 

청년들의 스펙 경쟁을 완화하는 ‘스펙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 기업들은 지원자의 잠재적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안적 채용을 고민 중이다. 특히 최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많이 활용되는 ‘자유 양식 입사지원서’ 등의 도입은 불필요한 스펙 기재란을 없애고, 필요한 직무 역량을 강조하는 데 있어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원하는 바를 채용 공고에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써 지원자들의 불필요한 노력을 줄이고 입사 의지를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정부는 지난해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발표한 후 청년 맞춤형 고용서비스 제공, 특화 일경험 및 경력재설계 지원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약 1년 동안 직장에 다니지 않으며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일명 ‘쉬었음’ 청년이 증가하는 등 여전히 청년층 취업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가 초래한 사회적 낭비를 인식하고 올바른 채용 문화를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청년층의 취업난과 스펙 경쟁, 나아가 고용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노동 개혁 및 국내 기업들의 채용 문화 개선이 빠르게 이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