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아침, 대만의 저녁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대만이 따스하면서도 강렬한 햇빛 아래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호텔 앞 넓고 긴 직선 도로를 따라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고, 도로 위에는 많은 차와 오토바이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높이가 낮고 회색빛이 가득한 건물들과, 그 사이 어색하지 않게 껴있는 커다란 불교 사찰 앞으로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였다. 살갗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낯선 공간에 와 있음을 상기시켰다.
대만은 아침 식사 문화가 잘 발달해 있기로 유명하다. “아침은 부자처럼, 점심은 배부르게, 저녁은 가난하게 먹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고, 아침에만 운영하는 식당도 다수 있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도착한 목적지에는 아침 7시임에도 불구하고 대기 줄이 2층부터 계단을 따라 1층까지 내려와 건물 밖까지 나와 있었다. 건물 옆에 쭉 늘어진 줄 뒤에 서면 앞에는 머리가 부스스한 사람, 조용히 핸드폰을 보거나 옆 일행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편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사람, 아침밥을 포장해 가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대만 사람들에게는 아침밥이 하나의 일상임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가게에 들어서면 투명한 유리 뒤에 위치한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하는 직원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주문과 동시에 음식을 받아 가며 빠르게 회전이 이뤄지고 있다. 아침에만 운영하는 식당이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대만에는 ‘주방이 있는 집’이라는 말도 있다. 집을 선택할 때 주방이 하나의 옵션인 것이다. 더운 날씨 탓에 집에서 요리하는 것보단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더 선호하면서 나타난 주거 특징이다. 그래서 아침밥도 주로 밖에서 사 먹고, 특히 시원해지는 밤에 이런 선호 현상이 강해져 야시장이 잘 발달해있다. 야시장에 들어가면 길거리 음식 하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수많은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 △가방을 멘 대학생들 △일이 끝나고 지친 듯 앉아있는 어른들이 보인다. 열심히 요리 중인 점포 사장님들도 보인다. 대만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대만식 핫도그 △우육면 △굴전 △오레오 튀김 등 대만만의 특색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먹어보면서 고양된 기분으로 지나가다 보면, 콧속에 침투해 열성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취두부 냄새가 나를 다시 현실에 던져놓는다.
요즘 기숙사 침대에서 일어나 채비를 갖추고 나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학우들을 볼 때면, 문득 햇살 가득한 그 여유롭던 대만의 아침이 떠오른다. 늦은 밤 도서관에서 나와 조용한 공기를 마시면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야시장 속 대만 사람들이 떠오른다. 대만의 여유로움이 그립다.
타이베이에서 대만을 알다
대만이 자랑하는 대형박물관, 국립고궁박물원의 출발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 10월 10일 국립고궁박물원은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첫 개관을 시작했다. 이후 국민당의 북벌이 성공하며 고궁박물원은 1928년 국민정부 소속이 됐다. 하지만 불과 5년 뒤인 1933년 고궁박물원의 유물은 당시 산해관 근처까지 진격한 일본군을 피해 남쪽 상하이로 옮겨지게 된다. 남쪽으로 옮겨졌던 유물들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다시 베이징으로 복귀했지만, 1948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정세가 불리해지자 다시 대만으로 옮겨졌다. 타이중에서 보관되던 소장품들은 1965년 11월 12일 타이베이시에 국립고궁박물원이 개관함에 따라 그곳으로 옮겨졌고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립고궁박물원은 북부에만 존재했지만 대만 남북의 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15년 고궁박물원 남부 분원이 대만 남부 자이시에 완공됐다.
현재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은 취옥백채, 육형석과 같은 대만 최고의 유물과 함께 약 70만 점에 달하는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유물들은 중국 고대부터 △송 △원 △명 △청 왕조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옥으로 만들어진 여러 유물과 옛 중국의 자기에는 세월의 흔적 속 장인들의 섬세한 솜씨가 남아있었다.
타이베이 101은 508m, 101층으로 지어진 대만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1990년대 대만을 금융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정책에 따라 ‘타이베이국제금융센터’라는 이름으로 건설됐고 완공 직전에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타이베이 101은 5층에서 입장해 89층 메인 전망대로 향하게 된다. 382m 높이의 89층 전망대에서 △한낮에는 푸른 하늘과 대만의 햇살 △늦은 오후에는 일렁이는 석양 △밤에는 반짝이는 타이베이 시내를 감상할 수 있다. 91층에는 옥외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는데, 기상 상태가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경우에만 개방한다. 이곳에는 타이베이 101에 얽힌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전시 공간과 유리 벽 없이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관람을 마친 후 출구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88층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댐퍼가 있다. 두께 12.5cm의 강철원반 41장을 붙여 만든 쇠공으로, 지름 5.5m에 660t의 무게를 가진 댐퍼는 지진 발생 시 건물 대신 진동함으로써 건물의 진동을 상쇄한다. 2018년 2월 대만 화롄 지진 당시 진도 7의 강진에도 타이베이 101은 댐퍼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았다. 한편 타이베이 101의 마스코트 ‘댐퍼 베이비’는 문어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댐퍼를 형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