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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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5.18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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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학년도 학위수여식
김무환 / 총장
김무환 / 총장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께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포스텍에서 보내왔던 여러분을 직접 만나 축하 인사와 함께 미래를 위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세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여전히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올해도 졸업생 여러분과 만날 기회를 앗아가 버렸습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담아 편지라는 형태로 졸업생 여러분께 인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몇 초 만에 전 세계로 메일을 보낼 수 있는 이 시대에 ‘편지’라는 아날로그적인 소통방식이, 과학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우리대학, 공학자인 저와는 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졸업이라는 기쁨을 맞은 여러분 모두와 함께할 수 없는 지금은,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직접 닿을 수 있는 편지가 모든 분에게 지금의 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해 졸업식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취소하며, 저는 졸업생 여러분께 졸업식이란 졸업생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행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여러분이 포스텍에서 보내온 일상, 경험한 일, 느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까지 모두 하나 빠짐없이 포스텍이라는 대학의 역사이며,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포스텍을 떠난 졸업생 여러분은 저를 비롯한 교수님들과 직원 선생님, 그리고 대학의 자랑이자, 미래입니다. 
그런 소중한 여러분을 졸업식이라는 중요한 행사에 모두 초대하지 못한 대신, 작은 선물을 같이 보냅니다. 지금쯤 여러분은 편지에 동봉된 펜이라는 선물에 조금 의아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만큼이나 아날로그적이죠. 이 편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는 이 시대에 왜 펜을 준비했을까 하는 생각도 드셨을 겁니다. 
처음 행사를 대신해 여러분께 보낼 선물을 고민하면서, 여러 아이템을 떠올렸습니다. 요즘 한창 필요로 할 법한 마스크 스트랩이나, 혹은 대학을 기억할만한 기념품 같은 것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분의 앞날에 의미가 있을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의 펜을 들어 글을 쓰라(If you want to change the world, pick up your pen and write)”고 했습니다. 졸업식을 기해, 여러분은 저를 포함해 모든 포스텍 교수님의 제자에서, -설령 어떠한 길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후배이자, 동료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조금 평범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의 시간과 삶을 그려나갈 출발점이자, 각각의 미래와 세상을 바꾸어나갈 도구라는 의미로, 펜 한 자루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선물을 보내며 정말 큰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이 이 펜을 사용하는 순간이 과학을 통한 ‘도덕적 궤적(the arc of the moral universe)’을 그리는 순간이기를 바랍니다. 과학 저술가인 마이클 셔머는 “The arc of the moral universe is long, but it bends toward justice.”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을 인용해 과학이 이 세상을 윤리적이고 진보적인 세계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설명합니다. 
그 예로 떠오르는 것이 최근 몇 년간, 우리대학에서 발표된 조립형 인공장기 ‘어셈블로이드(assembloid)’나, 당뇨병 환자의 피부질환을 구현한 인공피부, 3차원 나노섬유를 이용한 세포군집체 등의 연구성과입니다. 이 성과들은 우리 몸 밖에서도 신약은 물론 독성을 실험할 수 있는 실험용 신체조직으로, 신약의 효과를 훨씬 더 빨리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물실험을 줄여 소중한 생명의 희생도 최소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연구성과는 물론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이성적 사고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수호하는 데에도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포스텍의 교육을 받고, 또한 이 캠퍼스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여러분들은 이미 이를 위한 준비를 마친 대한민국의 인재들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더욱더 정의롭게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펜으로 그 도덕적 궤적을 계속 그려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정말 이 펜으로 세상을 바꿀 논문이나 글을 쓸 수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개인의 삶을 바꿀 서류에 서명을 할 수도 있겠지요. 생각하자니 좀 슬프지만 금방 잃어버릴 분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때에 사용되든, 또 소모품인 만큼 평생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언젠가 여러분이 현재와 미래에 대해 불안함과 어려움을 느낄 때, 이 펜에 선배들이 보내는 응원과 애정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고 포스테키안으로서의 자부심을 되새겨 준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과 가족, 그리고 포스텍 구성원 모두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졸업식이라는 중요한 행사를 간략하게 진행하고, 또한 마지막 인사를 졸문으로 대신하는 점,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캠퍼스에서의 생활을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모든 졸업생을 캠퍼스로 모으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안정되어 여러분과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될 때, 포스텍의 가족으로서 캠퍼스에서의 추억을 돌아볼 시간을 꼭 마련하겠습니다. 
졸업을 다시 축하하며, 여러분의 미래가 5월의 햇살처럼 항상 찬란하게 빛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