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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권유로 지난 8월 한 달 간 프레시안이라는 인터넷신문에서 인턴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 프레시안은 원래 인턴 기자를 뽑지 않는다. 따라서 인턴 기자가 들어와도 월급을 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신문방송학과도 아닌 공학도가, 돈도 한 푼 받지 못하는데 한 달 간 다른 기자와 같이 출퇴근하며 일하겠다니, 그분들이 의아해하면서도 나를 당돌하게 생각하신 게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난 이런 일을 할 기회를 얻은 것조차 행운이라고 여겼고, 그래서 월급이 없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 시간에 과외를 했으면 족히 몇 백만원을 벌었겠지만,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내 미래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정들 중 가장 현명하고 탁월한 것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지금도 잘 알고 있다. 첫날에는 미리 연락드린 박인규 대표님과 간단한 얘기를 나누었고, 박 대표님께서 직접 다른 기자 선배들을 일일이 소개시켜 주셨다. 여러 선배들이 외근 중이셨고, 한 분은 6자회담이 열리고 있던 터라 베이징에 가셔서 내가 그 책상을

여론 | 김요한 / 전자 04 | 1970-01-0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