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전압 고분자 액추에이터, 인간의 근육들을 재현하다
저전압 고분자 액추에이터, 인간의 근육들을 재현하다
  • 박문정 / 화학 교수
  • 승인 2013.09.0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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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 저전압 고분자 액추에이터
1996년 대학교 1학년 시절 우연히 TV에서 양팔이 없이 태어나 버려져 수녀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그 누구보다 해맑은 7살 소년 ‘구원이’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 아파하며 본 기억이 있다. 양팔이 없고 두 다리도 제대로 쓸 수 없어 데굴데굴 굴러 입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사물의 촉감 또한 제대로 느끼지 못해 수녀님이 업고 다니며 “눈은 만지면 바스락 소리가 난단다”, “흐르는 물은 손을 가져다 대면 손등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나” 등등 일일이 설명해준 그 장면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당시 나는 일반물리, 일반화학, 미적분학 등의 일반 필수과목의 숙제에 허덕이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때의 큰 감명이 17년이 지난 지금 고분자 물질을 이용해 인공근육에 관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인공 피부나 손가락, 발가락 역할을 하는 인공 근육을 실제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보였다(물론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그런 것이 가능했지만).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어떠한가? 놀랍게도 과학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달하여 이러한 인공 근육이 각종 로봇에 이미 적용되고 있으며 인체에 적용 가능한 생체모방형(biomimetic) 기술로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아래 [그림 1]은 고분자 물질을 이용하여 로봇의 손가락과 팔을 움직이는 Soft robotics를 보여주고 있다.
 
이온성 고분자 블록공중합체를 이용한 전기 감응성 액추에이터
인간의 근육처럼 움직이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외부장이 가해졌을 때 수축과 이완을 하는 물질이 필요하다. 이러한 소재로 만들어진 기구를 액추에이터(Actuator)라고 하는데 전기장에 의해 구동할 수 있는 것을 전기 감응성 고분자 액추에이터(Electro-Active Polymer Actuator, EAP)라고 부른다. 특히 EAP의 카테고리 중 하나인 이온성 고분자 액추에이터(Ionic Polymer Actuator)가 차세대 새로운 개념의 액추에이터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연구되고 있다. 그 이유는 이온성 고분자 액추에이터가 중량이 적고 유연성이 뛰어나며 비용면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는 이온성 고분자 액추에이터가 가장 각광받는 생체모방형 재료라고 할 수 있다. Ionic Polymer Actuator가 전기장에 반응하여 수축과 이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온성 고분자 내부에 포함된 양이온과 음이온이 주어진 전기장 하에서 각각 (-)극과 (+)극으로 이동하기(migration) 때문이다. 이온들이 각각 반대 전하를 가지는 전극으로 이동함으로써 부피가 큰 이온(일반적으로 양이온)이 몰리는 전극은 부피 팽창을, 부피가 작은 이온(일반적으로 음이온)이 몰리는 전극은 부피 수축을 일으키게 되어 결과적으로 Actuator의 휘어짐을 이끌어내게 된다. 따라서 Actuator에 사용되는 이온성 고분자를 디자인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1) 양이온과 음이온의 크기 차이가 클 것 그리고 2) 이온의 높은 이동도(mobility)를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것이 되겠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이 1) 번은 과학자로서 그다지 흥미로운 숙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 번은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다소 도전적인 과제로 남아있다.
 
나노구조 고분자와 이온성 액체를 이용한 저전압 액추에이터
최근까지 많은 연구진의 연구에 힘입어 다양한 고분자 재료를 이용한 Ionic Polymer Actuator가 개발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고된 Actuator는 구동전압이 4~5V로 높고 외부장에 느리게 반응하며 물을 이온전달의 매개체로 사용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높은 전압에서 물이 분해되어 작동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성능이 크게 쇠퇴하는 문제점을 보여왔다. 이러한 사실에 착안해 본 연구진은 인간 친화적 생체모방형 액추에이터로 적용하는데 가장 필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낮은 구동 전압이라고 판단하여 1V 미만의 구동 전압에서도 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새로운 고분자 액추에이터를 개발하는데 연구의 초점을 두었다. 또한, 공기 중에서의 안정성을 얻기 위해 물을 대체하여 비휘발성이고 전기화학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이온성 액체를 사용하여 장기간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액추에이터를 디자인하고자 하였다. 아래 [그림 2a]와 [그림 2b]는 본 연구진이 합성한 이온성 고분자와 이온성 액체의 화학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블록 공중합체(block copolymer)라고 불리는 특정 고분자를 사용하여 [그림 2c]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은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잘 정렬된 이온성 채널을 고분자 내부에 구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노미터 크기의 이온성 채널을 도입한 이유는 유기 양이온과 음이온으로 구성된 이온성 액체를 준 전기장 하에서 각각 (-)극과 (+)극으로 이동할 때 지름길을 만들어져 그 이동도를 최대화하기 위함이다.
그 결과 1 V 미만의 구동 전압에서도 수 mm를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전기 감음성 고분자 Actuator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래 [그림 3]은 개발된 Actuator가 1 V의 전압하에서 플라스틱 공을 1초 안에 집고 다시 내려놓는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인공 근육과 같은 생체모방형 기기를 AAA 1.5 V 배터리 하나만을 가지고도 충분히 구동시킬 수 있다는 매우 고무적인 연구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적이 없는 사례에 해당한다.
본 연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수 나노미터의 이온성 채널을 가지는 고분자 물질을 사용한 데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액추에이터는 특별한 내부 구조를 가지지 않는 고분자 물질을 사용해 왔다. 그 때문에 수축, 이완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이온이 이동하기에 많은 시간이 필요해 반응 시간이 느린 단점을 보여왔다. 이에 반해 본 연구진은 나노미터 크기의 상 분리를 일으키는 블록 공중합체를 이용하여 잘 정렬된 이온성 채널을 구현하였고 이 내부에 이온성 액체를 탐침 시킴에 따라서 이온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지름길을 만들어 이온 수송 효율이 크게 향상할 수 있었다. 또한,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잘 정렬된 이온성 채널들은 이온성 액체의 양이온과 음이온이 이동함에 따라서 매우 체계적인 수축과 이완을 보여 전기장의 방향을 지속해서 바꾸어줌에도 고분자의 나노구조가 망가지지 않고 가역적으로 수축과 이완을 보임을 약 13,500 사이클의 수축/이완 내구성 테스트를 통해 증명하였다. 아래 [그림 4]는 본 연구진이 개발한 Ionic Polymer Actuator의 개념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본 연구진의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 최신호(2013년 7월)를 통해 발표하였다. 향후 고분자 구조에 따른 Actuator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바이오 소재로 응용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Actuator를 개발하는 데 힘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