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뚤어진 교육 방법은 부모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비상식적인 제도인 게임 셧다운제와 같은 정치적 문제와 함께 학교 폭력, 자살, 청소년 범죄 등 사회적 문제 또한 일으키고 있고, 진정 학문을 탐구해야 할 대학생들의 사고를 무디게 하고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며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저하하는 등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교육의 한 방법으로서 경쟁이 의미를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쟁을 위해 교육이 존재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에서 비롯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성적으로 반을 나누고 성적으로 학생을 평가하며 성적으로 대학을 정하는데 익숙해지고, 결국 우리 사회는 성적을 통해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대학이라 하여 다른 점이 있는가? 100점 만점이 4.3점 만점으로 바뀌었을 뿐 학생들 줄 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매일매일 베껴서 내는 과제에 만점을 부여하고 이전 시험을 외워서 가기만 해도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평가하는 모습에서 깊이 있는 사고를 이끌어 내는 참교육의 모습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물론 비뚤어진 방식으로 대응하는 학생들의 문제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들의 잘못된 학업 태도를 탓하기 전에 그 근본적인 원인, 즉 내가 남보다 앞에 서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고를 갖게 만든 우리의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교육은 인간이 행복한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과정이고, 한두 명의 뛰어난 사고가 아닌 모두의 깊이 있는 사고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본인 나름의 목표에 대해 깊이 있는 사고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그 성취가 누가 빨리 나타나는가를 따지는 속도 경쟁이 아닌 것이다. 이를 우리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대학 교육이 전달하는 내용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당장 그 학기에 시험을 잘 봐서 높은 학점을 맞는 것이 학업의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스카상에는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은 있어도 신인배우상은 없다. 누가 빨리 두각을 빨리 나타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누가 가장 잘했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육은 그리고 공부는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일 뿐이다. 만약 지금 남들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이 정한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길에 본인이 서 있다면, 지금의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본인을 믿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이들을 칭찬하기에 앞서서 이런 학생들을 응원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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