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학업 성과는 휴식에 비례한다
[독자투고] 학업 성과는 휴식에 비례한다
  • 소흥렬 / 명예교수
  • 승인 2011.05.0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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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하고 있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사건을 생각하면서, 포항공대 학생들과 나의 생각 한 토막을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써 보내기로 했습니다.

 카이스트는 여러 가지로 포스텍과 비슷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형제학교와 같으므로, 하루 속히 그런 비극적 문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서 카이스트 쪽의 구체적 문제점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의 포항공대 체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 카이스트의 교수들과 학생들에게도 간접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포항공대를 떠난 이후에도 매일 글 쓰는 작업을 하면서 내가 깨달은 바입니다. 작업이 자기 성찰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작업 효과는 휴식에 비례합니다. 학생들의 학업 성과 또한 휴식에 비례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영혼의 휴식을 위한 종교적 활동, 철학적 활동, 문학적 활동 및 예술적 활동을 위한 온갖 프로그램이 캠퍼스와 그 주변에 마련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포항공대 학생회관 2층에는 학생 누구나 가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가 있습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피아노 소리가 나면, 연주가 끝날 때까지 아래층 홀에 서서 듣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술 전시와 사진 전시를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작품을 꼭 감상하고는 철학 강의 시간에 그 작품들에 관한 평가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철학 강의 시간에는 종교문제, 예술문제, 문학문제 등도 논의하기 때문에 토론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말을 통해서 그들이 하는 활동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말에 성당에 가서 신부님과 나눈 대화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했으며, 사찰에 가서 스님과 나눈 대화로 자기 의견을 말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독서 서클겧??서클 등에서 토론한 내용을 철학의 문제로 질문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캠퍼스 곳곳을 산책하면서 철학적 사색을 하고 휴식도 즐겼습니다. 산책하는 길에서 만나 대화를 청해온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산책길에서 만난 어떤 학생과의 대화가 기억납니다. 나의 철학 강의를 수강하고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는 자기가 네 번이나 자살을 하고자 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매번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살시도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묻지 않았습니다. 내게 그렇게 어려운 자기 이야기를 해주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내게 자신의 자살시도 이야기를 해주었으니까 더 이상은 자살시도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그 학생의 마음이 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학생이었습니다.

 포항공대에서의 마지막 학기 강의를 끝내고 캠퍼스 산책을 하다가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교수님께서 산책하시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아쉽다는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내 마음과 내 영혼의 휴식을 위한 캠퍼스 산책이었지만, 그 곳 학생들의 마음과 영혼에 휴식이 되는 캠퍼스 공간의 한 장면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는 것이 흐뭇했습니다.

 학업 성과는 휴식에 비례합니다. 종교적 활동ㆍ철학적 활동ㆍ예술적 활동ㆍ문학적 활동 등을 통한 마음과 영혼의 휴식을 지켜가는 캠퍼스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마음은 그곳 캠퍼스를 산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