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동산] 인간의 고통과 공감
[노벨동산] 인간의 고통과 공감
  • 김영미 / 인문사회 대우조교수
  • 승인 2011.03.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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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이 인간의 본성…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통해 성장해야

 최근 세계적으로 공감(empathy)이라는 키워드가 학계를 넘어 대중문화계에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예컨대 협동하는 영장류 보노보연구로 유명한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진화인류학 프로젝트는 각종 다큐멘터리와 책으로 소개되어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경쟁보다는 협력이 인간 본성임을 보여주는 인지심리학 저서들이 서점의 매출액을 높이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베스트셀러 <공감의 시대> 덕분에 대중적 용어가 된 인지신경과학의 “거울뉴런” 개념은 기업컨설팅과 자기개발서적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인간행동의 비합리적, 정서적 기초를 실증하는 행동경제학, 감정사회학의 연구 결과들은 대중강연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필자는 이 현상이 21세기의 새로운 계몽운동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왜 공감이 이토록 대중적으로 각광받고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지나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20세기의 후반을 지배해 왔던 신자유주의, 합리적 개인들 간의 경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는 세계관의 과열이 주는 피로감에 지쳐 인간성의 다른 측면, 대안적 세계관을 찾고 싶어 하는 개인들이 많아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우리가 인류의 생존률을 높이는 “밈(meme)”에 본능적으로 끌린 결과일 수도 있다. 오늘날의 환경문제, 에너지위기, 빈곤과 불평등문제는 위로부터의 제도적 개혁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개인들의 가치, 태도, 삶의 방식의 변화 또한 필요로 하는데 이는 일종의 집합행동 딜레마를 만들어 낸다. 공감은 개인들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자발적으로 협력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본능적으로 혹은 절박하게 흡수하고 전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공감은 한마디로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완벽한 세계, 천국에는 공감이라는 감정이 없다. 공감은 오직 인간의 것이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의 불완전성이 인간 고통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공감의 기초이며 인류를 하나로 묶는 연대감의 주춧돌이다. 공감은 내가 설사 오늘은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더라도 언제든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자각인 것이다. 그리고 이 자각을 통해 우리의 성찰성(reflexivity)은 깊어진다.

 이것이 긍정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니체가 ‘나는 내 귀한 이들에게 고통, 낙담, 아픔, 병마, 부당한 대우와 모욕감을 기원한다. 그리하여 내 친구들이 심오한 자기혐오의 감정, 고문과도 같은 자기불신의 고통 그리고 패자의 처참함을 모른 채 살지 않기를 바란다’고 쓴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악담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호혜성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회는 좀 덜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는 희망의 표현이다.

 우리는 몰두하고 성취하는 개인을 이상적 인간으로 추앙해 왔다. 포스텍에 올 정도로 뛰어난 능력으로 축복받은 학생들은 이런 근대적 이상형에 누구보다 근접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그 축복의 무게를 느끼기 바란다. 그리고 그 시선이 자신의 내면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를, 고통받는 타인을 향해 있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의 이웃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비극 앞에서 이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