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삼각관계] 교수*직원*학생의 역할
[postech 삼각관계] 교수*직원*학생의 역할
  • 박수문 / 화학 교수
  • 승인 199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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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덞번째 이야기
교수의 눈에 비친 삼각관계
근래에 본교직원들의 목소리가 노조를 통하여 우리 대학의 커뮤니티에 비교적 강하게 들려왔다. 이로 인하여 지난 얼마간 학교 주변이 시끄러웠고, 포항공대신문에서는 학생과 직원, 그리고 교수들간의 삼각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한 일련의 특집기사를 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에게 이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꽤 오래 전부터 받아 왔으나 그 동안 거절해 오다가 더 이상 거절하기 힘들어 몇 자 생각을 적어보기로 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잘 못하다가는 여러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으므로 누구라도 다루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본인 개인의 생각을 논리도 없는 횡설수설로 엮어보고자 한다.

대학은 당연히 학생*직원*교수의 삼각관계로 이루어지며 이들 중 그 어느 그룹도 중요하지 않은 그룹이 없다. 교수들은 가능한 한 좋은 학생들을 받아들여 그들의 능력을 개발시켜 ‘시장’에 내어놓는 게 임무이며 직원들은 교수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교육과 연구를 잘 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지원을 하는 게 기능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학생들은 교수들의 노력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배우는 일과 자기개발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삼각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모든 일들이 쉽고 상승효과를 내며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는 비교적 명확하다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의 능력을 개발하며 연구를 수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교수들은 그들의 주요 임무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기도 하지만, 또한 많은 재정적 부담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우선 우리 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본교의 일년 예산 약 1000억원 중에 약 300억원 정도가 재단 전입금으로, 그리고 약 350억원 정도를 교수들의 연구비라는 형태로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고 나머지가 가속기 운영 등을 위하여 정부의 돈, 학생들로부터 걷어들이는 등록금 및 기타 수입이다. 불행히도 우리 나라에서는 소위 간접비용이라고 하는 OH(overhead)를 별로 인정치 않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연구비의 약 50~90%의 OH를 징수하므로 우리대학처럼 약 350억원의 연구비 수입이 있다면 대학에서 쓸 수 있는 수입이 최소한 약 180억원은 되어 대학의 재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학교의 경우에는 OH는 약 10% 정도밖에는 되지 않지만 연구업무를 대학원생 장학금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외부의 돈으로 수행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우리와 같은 연구중심대학의 교수들의 임무는 학생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외부로부터 연구비를 걷어들여 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여 본교를 유명하도록 만드는데 있다고 보아야겠다. 언론이나 학생들은 연구중심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연구를 너무 강조해서 학생들 교육이 희생당하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지만, 최상의 교육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30~40년 전에는 교수들의 강의노트가 누렇게 되도록 해마다 똑같은 내용을 강의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이것은 바로 교수들이 연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연구를 할 수 없으므로 공부를 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는 매우 비싼 장사이다. 돈은 한정 없이 들어가고 그로부터 나오는 결과는 긴 시간 뒤에야 빛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연구를 해야하며,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연구비를 열심히 걷어들여야 한다. 이처럼 연구는 학생을 가르치는데 간접적으로 돕고 있지만, 대학원 학생들은 실제로 연구로부터 거의 모든 지식을 얻게 되므로 연구자체가 곧 대학원 교육이다. 이와 같은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교육과 연구에 능동적으로 참가해야 하며 직원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학에서의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비교적 생색이 나지 않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경우에는 직원들은 교육과 연구를 위해서, 또한 학생들의 활동 등을 적극 지원함으로서 학생들과 교수들의 실질적인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 일반 행정, 교육과 연구를 위한 기술적인 지원, 연구비의 회계와 같은 일들은 물론, 대학의 입학도 모두 맡아서 한다. 아마 직원이 학부 입학까지 담당한다는 사실은 우리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믿기 힘들 것이다. 보통 학사담당 부총장이 위원장이 되는 입시 위원회에 교수들이 앉아 입시의 정책을 정할 뿐 실제의 학부 입시는 직원들이 모두 하는 것이다. 입시담당 직원들은 입학 지원생의 고교성적, 지원생들이 써낸 논술(essay), 고교교사로부터의 추천서, 그리고 우리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SAT(scholastic aptitude test) 성적, 면접결과 등을 바탕으로 하여 결정을 내리고 학부모나 학생들은 그 결정을 받아드린다. 면접에는 교수가 임하는 일이 없다. 그것은 우리처럼 고등학교의 성적과 추천이나 수능시험 성적을 믿지 못해서 학생을 한 번 시험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수들이 연구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일례로 우리가 잘 아는 하버드 대학에서는 입학 지원생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하버드 대학 출신에게 면접을 요청하여 그 결과를 보고토록 한다. 우리에게서 볼 수 없는 사실은 미국의 대학에서는 교수와 직원간에 깊은 신뢰를 구축하여 많은 일들을 직원들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본인이 아는 바로는 미국의 중서부에 소재하는 대학들의 화학과의 경우에 학과직원의 수는 교수의 숫자의 평균 약 1.2배가된다. 교수들 3-4명에 비서 한 명을 배치하여 교수들의 업무를 도우며, 학사관리를 비롯한 모든 행정을 담당하고, 필요한 유리세공을 해 주기도 하며, 고장난 계기를 고쳐주기도 하고 또 새로운 계기를 설계하기도 하며, 시약창고를 관리하며, 교수들의 연구비를 관리하며 연구가 끝난 뒤에 연구비 사용실적도 보고한다. 따라서 교수들은 그야말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지원해 주도록 되어있다. 본인이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직업의식이 매우 철저해서 일을 맡긴 뒤에는 언제나 그 결과에 만족했었다. 그러면서도 불평을 들어본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학생과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겠다. 대학에서의 학생의 역할은 배움에 능동적으로 처하는 일이라 하겠다. 본인이 귀국한 뒤 학급에서 가르칠 때 가장 실망했던 것은 우리 학생들이 매우 수동적이란 사실이었다. 본교 학생들은 본인이 가르치던 주립대학의 평균 학생들에 비하여 매우 우수한 반면 모든 일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누구나 잘 알다시피 배우는 것은 능동적인 과정이며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없이는 배울 수 없다. 교수의 역할은 학생들이 배울 때 가지는 장애의 벽(barrier)의 높이를 낮추어 주는 일이며 배우는 것은 학생이 하는 것이다. 본인이 미국에서 가르칠 때의 일인데 숙제는 보통의 경우 책의 연습문제 중에서 선정해서 주고 모르는 문제는 친구와 상의하던가 교육조교에게 물어서 ‘이해하거든’ 적어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거의 매주 몇 문제씩 빠뜨리고 숙제를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그 학생에게 왜 어떤 문제의 답은 적어내질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의 대답이, 조교나 친구에게 물어서 답은 알았지만, 그 문제 푸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정해진 날 시험을 볼 수 없었던 학생들에게 그 다음 날 똑 같은 시험문제를 주어보기도 했는데 학생들 간에 전혀 통신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본인은 시험문제를 나누어 준 뒤 감독도 하지 않는 게 예사였고 모든 일에 관해서 학생들을 믿게 되었다. 바로 이점이 우리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들이라 하겠다.

우리학교와 같은 작은 학교라도 학생*직원*교수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약 3,500여명이 어울려 생활하는 우리학교는 비교적 작지만 하나의 조그만 사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서로 믿고 자기의 맡은바 소임을 철저한 직업의식으로 해결해 나간다면 어려운 일이 무엇이며 안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이처럼 서로 믿고 협력해서 이 학교를 끌고 나간다면 세계최고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