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기획] 교수연봉제, 시작부터 ‘글쎄요’
[학원 기획] 교수연봉제, 시작부터 ‘글쎄요’
  • <학원부>
  • 승인 2000.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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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 독립성 보장이 성공의 관건
지난해 교수사회의 최대 이슈였던 교수연봉제가 난항 끝에 확정*시행됨에 따라 기존의 교육*연구환경과는 다른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교수연봉제는 사실상 교수의 지위를 결정하는 잣대로서 교수사회는 물론 대학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김범만 교무처장은 “교수연봉제 도입은 2년전부터 교무위원회를 통해 논의된 사안”이라며 “효율을 중시하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연구의 생산성 향상을 목표로 도입된 것”이라고 교수연봉제 시행의 취지를 밝혔다. 김 처장은 대학본부가 추구하는 교수연봉제의 기본방향은 ‘학과 중심의 연봉제’라고 설명했다. 대학본부에서 모든 교수들을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각 학과 자체적으로 평가방법과 시행방법을 정하도록 한 후 각 학과별로 운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본부는 각 학과에서의 전체적인 진행상황을 검토하고 행정겴瑩ㅐ岵?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본부가 내세우는 교수연봉제의 시행배경이나 취지는 일면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대학본부가 시행하는 교수연봉제는 기대되는 효과보다 그에 따른 부작용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문제이다.

우선 교수들이 연구의 양적 증가에만 치중할 경우 발생하게 될 연구수준의 질적 하락에 대한 우려다. 지금은 우리 학교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세워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우리 학교의 비전은 ‘연구중심대학’이 되어야 한다. ‘연구중심’이라 함은 단순한 연구의 양적인 증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연구의 양적 증가에 치중해 왔고 실제로 현재 우리 학교 교수 1인당 논문 수는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정책에 있어 단순한 연구의 양적인 성장보다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한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평이한 다수의 연구보다는 질 높은 연구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학교는 연구의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을 중시해 왔다. 많은 교수들은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월급 지급을 위해 불필요한 산업체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등 연구 질적인 향상을 위한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이진원(기계) 교수는 “장시간을 연구에 투자해도 성과가 나올까 말까 하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연봉제 시행은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연구의 양적인 증가를 위한 교수연봉제 시행은 연구의지 장려라는 시행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연구의 질적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 교수들은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보다 당장 성과가 나타나는 연구에만 매달릴 가능성이 크며 단순히 연구의 양적증가에 집착할 우려가 있다. 단순히 자신의 연봉 때문이 아니더라도 교수들 사이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이므로 이러한 예상은 더욱 신빙성을 가진다.

다음으로 연봉제 시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객관적 평가 여부에 대한 불신으로 인한 혼란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교수연봉제는 지난해 여름 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준비과정을 거쳤고 대학본부는 연구위원회에서 제출한 시행안을 토대로 입안했다. 하지만 대학본부의 시행안은 연구위원회의가 제출한 시행안과 상당부분 달라진 것이었고, 교수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이전의 사안들을 수정하면서 결국에는 연구위원회의 시행안에서 존속한 것은 거의 없다. 또 얼마전 재단이사회에서 교수연봉제가 통과되었으나 구체적인 시행안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 교수는 “객관적인 평가가 연봉제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인데 이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시행방법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원칙도 없는 상태에서 각 학과에서 결정된 평가방법이나 시행방법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연봉제 시행과정에서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결정과정에서의 소외 등으로 인한 교수들의 반발이다. 교수연봉제 도입과 시행과정에서 당사자인 교수들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았고 대학본부와 교수들간의 공식적인 대화의 자리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교수들의 의견은 무시되었으며 정보의 왜곡으로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교수들도 일부 있었다. 교수평의회는 지난해 이러한 대학본부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정해진 원칙을 무시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사례가 다수 있어 대학내 불신과 우려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판단하고 대학본부에 개선안을 제시했다. 이 ‘의사결정개선안’에서 교수평의회는 원칙에 충실한 의사결정과정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개선을 요구해 부분적으로 대학본부의 개선약속을 받아내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외국대학에서는 교수연봉제를 시행해 잘 운영되고 있으며 대학본부는 외국대학의 경우처럼 각 학과별로 시행방법과 평가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고 그에 따라 연봉제를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 외국대학의 경우와 같이 연봉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평가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는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의 가능성이나 질적인 수준을 고려하는 융통성을 더한다면 연구성과의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모두에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객관적이 평가를 위해서는 각 학과의 독립성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지금까지의 정책결정과정에서 나타난 대학본부의 일방적인 결정이 평가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교수연봉제 시행에 있어 대학본부의 역할은 각 학과의 결정을 검토* 보완 하는데 한정되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이에 대한 명문화된 기준을 정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각 학과 내에서 교수들 간의 토론과 합의점 도출에 의한 평가기준 마련과 시행방법 결정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