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텅 비고 기숙사와 연구실만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된다. 내부로 침전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기도하는 외로운 날들의 시작이다. 그러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어느덧 졸업이 목전에 다가오고서야 삶은 새로운 발견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실험실에서는 다른 논문에서 다루어진 방법을 새로운 시스템에 적용하는 일을 할 뿐이다. 어디서 어긋난 것이었을까.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과학이 너무 좋아 이 길에 들어선 후배는 웬일인지 학생 참여를 배제한 학교행정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리고는 좌절하였다. 그의 저돌적이기만 한 태도는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창의적인 사고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나타나곤 한다. 역사의 천재들이 권위에 대해 도전적인 막내들이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일이다.
우리학교는 고요한 이 사회에 그야말로 파란(波瀾)이었다. 영일만의 신화처럼 무에서 유를 낳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였다. 그때 우리에게는 세계의 대학 속에 우뚝 서려는 기백이 있었다. 한반도의 꼬리에 붙어있는 이곳 포항에서 우리는 난장(亂場)을 벌일 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조용하다. 2005년은 고 김호길 박사님이 대학설립을 위해 팔을 걷으신지 20년이 되는 해다. 사람으로 치면 한참 반항을 시작할 청년의 나이다.
2005년의 포항공대에 바란다. 그대는 너무 예의 바르고 시체처럼 조용하다. 학생들은 캠퍼스에 활력을 불어넣는 붉은 혈액이다. 이들을 언제까지 인큐베이터에 가두어 놓을 수는 없다. 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을 포용하라. 언젠가 세계적인 석학과 어깨를 견줄 창의적인 마음이 이들 중에서 싹을 틔울 것이다.
개학일이 다가오고 다시 학생들이 하나 둘 캠퍼스에 들어선다. 그때야 나도 덩달아 활기를 느끼며 대학의 주인은 이들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봄과 같이 싱그러운 이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포항공대에도 도전적인 힘이 다시금 샘솟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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