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오름돌] ‘촌’에 살아도 ‘돈’만 있다면
[일흔여덟오름돌] ‘촌’에 살아도 ‘돈’만 있다면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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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얼마 전 서울 강남지역 논술겦溶?대비 학원을 다룬 어느 잡지의 보도에는 전라도에서 그룹을 만들어 토요일 학교 수업 마치는 대로 상경해 수업을 받고 일요일 오후에 내려가는 사례, 방학을 이용해 서울 친척집에 머물며 학원을 다니는 사례 등이 실린 바 있다.

둘. 고교 동기 중 대구 지역 의대에 다니는 어떤 친구는 주말에 청도까지 가서 과외를 한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수가 따름은 물론이다.

셋. 작년 여름방학을 맞아 전라도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고 있었다. 마침, 여수, 순천, 전주에는 대학 동기들 집이 있어서 하룻밤씩 묵을 수 있었다. 재밌는 것은 내가 묵었던 이들의 집이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크게 의식하고 있진 않았지만- 30~40평대의 아파트, 요즘 밥 먹고 산다는 집에 기본이라는 김치냉장고, 화이트칼라 직종 아버지. 기자의 집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최근 정운찬 신임 서울대 총장이 내놓은 신입생 선발 ‘지역할당제’ 방안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초 총장 취임을 앞둔 지난달 말, 정총장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발언에 불가했던 지역할당제가 교육계와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탄력이 붙더니 논의가 급격히 진전되어 시군구별로 2명씩 배정하는 형태로 방안이 구체화되면서 불과 한달여만에 향후 5년내 실시를 목표로 내세울 단계에 이르렀다. 지난 23일에는 한국외대 안병만 신임 총장도 ‘지역할당제’ 도입을 밝혀 추이를 관망하던 다른 사립대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지역할당제’의 추진 논리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인 지역 학생에 대한 제도적 배려일 것이다. 서울 및 수도권 출신이 절반가량, 여타 대도시 출신이 서울대 신입생의 70%를 차지한다는 통계는 도시와 농어촌 지역간의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노력은 긍정적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지역간 차이라는 환경이 우리 사회 내의 교육 기회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래의 교육환경은 지역적 차이보다는 소득수준에 따른 교육 기회 불평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쉬워진 수능은 학생의 진지한 노력과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패턴화된 문제에 대한 이해와 문제 풀이 기술의 전수, 곧 고액의 과외 교습과 학원 수업 등으로 충분히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곧, 과거보다 더욱 ‘없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대학별로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여러 특별 전형 또한 전문 논술 학원 및 면접 대비 학원 등이 등장해 ‘잘 갈고 다듬어진’ 학생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학벌이 부의 확대 재생산과 직결되는 우리 사회는 온 가정의 역량이 총동원되는 입시 열기로 인해 가정 형편과는 무관하게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도시와 농어촌 간의 불균형 역시 이러한 불균형의 단편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인 교육 환경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이러한 개혁의 시도 또한 그 의미는 불식될 수밖에 없다. 교육 기회 불평등 해소의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도시의 저소득층 자녀 대신에 농어촌 지역의 부유층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지역할당제가 전체 신입생의 10% 정도에 대해서 실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적 배려를 통한 사회 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 그 상징적 의미를 낮게 평가할 수 없다. 기존의 학벌주의 교육현실의 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의 신임 총장이 보여주는 교육 개혁에 대한 적극적 소신 또한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교육 기회 불평등 해소에 나선다면 차라리 ‘저소득층 할당제’ 같은 형태가 더욱 타당할 것이다. 현재의 지역할당제 역시 학과별 배정 등 문제가 산재해 있는 만큼 조금 더 노력을 기울여 엄밀한 심사 기준을 마련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