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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9일 오전 9시경 제주항공 7C 2216편 보잉 737-800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이하 무안공항)에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가 활주로 근처 구조물과 충돌한 뒤 폭발했다. 해당 여객기는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승객 175명(한국인 173명, 태국인 2명)과 기장·부기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 총 181명을 태운 상태였다. 폭발로 승무원 2명을 제외한 179명이 사망했고, 생존자마저도 중경상을 입어 병원에서 긴 시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정부는 사고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7일간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하고, 사고가 발생한 무안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또한 무안공항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사고의 물리적 원인은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사고 원인은 조류 충돌과 기체 결함이다. 사고 당일 한쪽 엔진에 조류 떼가 충돌한 이후 여객기 양쪽 엔진이 모두 꺼졌고, 모종의 이유로 랜딩 기어 및 유압 계통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기장은 동체 착륙을 시도했지만,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하는 과정에서 여객기가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며 폭발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당일 사고조사단을 구성하고, △기체 잔해 △엔진 △통신 기록 등 정보 수집과 분석을 시작으로 미국 교통안전위원회와 함께 현장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조사단의 분석 결과, 현장에서 수거된 여객기의 음성기록 장치와 비행자료기록장치 모두 여객기 기장의 조난 신호 이후부터 충돌 직전까지 4분간 기록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동 시간 1위 제주항공, 콘크리트 벽 둔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물리적 원인 중 하나로 기체 결함이 의심되는 가운데, 제주항공의 평균 항공기 나이와 가동률 모두 국내 저비용항공사(이하 LCC)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고의 여객기도 사고 전 48시간 동안 13차례 국내외 8개 공항을 오갔으며, 정비 시간을 포함한 공항 체류 시간은 1시간 내외로 짧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일각에서는 제주항공이 무리한 운항 스케줄을 강행하며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무안공항 사고 다음 날에도 제주항공의 동일 기종이 랜딩 기어 이상으로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고, 제주항공의 안전 관리가 미흡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됐다.
한편 여객기 폭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콘크리트 구조물과 관련해 무안공항의 시설 관리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일반적으로 활주로 주변에는 구조물이 설치되지 않거나, 외부 충격에 쉽게 무너지도록 설계된다. 하지만 지난 2023년 무안공항에서 방위각 시설물에 구조물 개량공사가 이뤄질 때, 콘크리트 상판이 덧대지는 등 안전과 관련된 설계 지침이 위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무안공항은 조류 충돌 예방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규정상 무안공항에는 조류 퇴치 담당자가 최소 2명 이상 있어야 했지만, 사고 당일 오전에는 1명만 근무 중이었다. 조류 퇴치에 사용되는 장비 또한 △차량 1대 △폭음경보기 11대 △엽총 4정이 전부로, 국내 여타 공항 대비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제주항공 발 안전 우려 확산
이번 사고는 국내 여객기 사고 중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남긴 만큼, 항공업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주항공뿐만 아니라 사고와 동일한 기종을 운용하는 LCC 전체를 대상으로 사고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고, 연말·연초 LCC 항공권과 해외여행 패키지를 취소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제주항공의 경우 사고 직후 하루 만에 6만 8,000여 건의 항공권이 취소됐으며, 올해 1분기 동안 국내외 항공편 총 1,900여 편의 운항 감축을 결정했다.
여객기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은
국토부는 사고 후속 조치를 위해 무안공항 활주로 폐쇄 기간을 오는 4월 18일까지로 연장하고, 지난달 24일까지 전국 공항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에 나섰다. 또한 정부는 사고 여객기와 동일한 기종을 보유한 6개 항공사를 대상으로도 특별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필요한 부분을 즉시 개선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항공사 △공항 △관제 △규정 등 분야별 긴급 안전 점검을 거쳐 4월까지 민간 전문가와 함께 항공안전 혁신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12·29 여객기 사고 피해자 지원단’을 가동해 유가족 지원의 속도를 높이는 한편, 국회와 소통을 통해 사고 조사 및 재발 방지를 뒷받침할 법안 마련에도 나설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은 지난달 17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해 “국민 안전에 무한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모든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유가족 지원과 사고 원인의 철저한 조사에 총력을 다하겠다”라고 발언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각고의 노력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항공사와 공항을 비롯해 항공업계 전반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항공사와 공항은 안전한 항공편 운항을 위해 기체 및 시설 점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정부는 국민의 불안이 해소될 수 있도록 항공업계를 철저히 감독하고 규제해야 한다. 항공 사고는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는 만큼,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또다시 같은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분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