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SF를 그리는 작가, 김초엽을 만나다
따뜻한 SF를 그리는 작가, 김초엽을 만나다
  • 김종은, 조민석 기자
  • 승인 2022.03.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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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의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 문단에 이름을 알린 김초엽(화학 11) 동문은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SF 작가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김 동문이 작년에도 ‘므레모사’, ‘행성어 서점’, ‘방금 떠나온 세계’ 등을 출간하며 여러 매체로부터 꾸준히 주목받는 가운데 본지에서 김 동문의 대학생활, 작품 활동, 미래 계획에 대해 인터뷰했다.

▲김초엽(화학 11) 동문 정면
▲김초엽(화학 11) 동문 정면

대학생활

우리대학 입학과 전공 선택의 계기는 무엇인가?

고등학생 때부터 화학을 좋아했다. 원자와 분자가 정밀한 규칙에 따라 물질 세계를 구성하고, 그것이 인간과 동물, 식물, 지구, 우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사실 다른 대학을 우선순위로 마음에 두고 있었고, 포스텍은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의 추천으로 지원하게 된 대학이었기에 입학은 우연이나 다름없었다. 합격하고 나서도 부모님이 워낙 좋아하셔서 약간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오게 됐는데, 입학 후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오길 잘했다 싶었다.
 

대학생활이 작품 활동에 어떤 형태로 영향을 미쳤는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정말 많다. 전공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작품 활동에 직접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지만, 당시 배운 과학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덕분에 지금도 자료 조사를 할 때 도움이 된다. 또한, 인문사회학부의 교양 수업이 글쓰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작문 수업도 많이 들었고, 과학과 사회, 인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수업 등을 통해 세상을 보는 관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생활 동안 과학 커뮤니케이션, 과학철학 세미나 참여, 해외 봉사 등 다양한 활동에 도전한 계기가 있는가?

진로에 고민이 많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더 많은 활동을 해본 것 같다. 연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연구가 나의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당시에는 포스텍을 졸업한 이후에 창업이나 연구, 기업 취직 외에 다른 진로를 상상해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더 이것저것 해보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이해되지 않는 전공 수업을 듣는 게 제일 힘들었기에 새로운 도전에 있어 크게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책을 아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대학생활 중 도서관 서가를 자주 들락날락했다. 최근 읽은 책 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과학에는 정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공계 학생들이 많은데, 과학의 매력은 스스로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100%의 진리가 없다는 걸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과학의 특징 중 하나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왼쪽부터 김초엽(화학 11) 동문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므레모사'
▲왼쪽부터 김초엽(화학 11) 동문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지구 끝의 온실', '므레모사'

작품 활동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대학에서 글쓰기와 관련해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소설은 정말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쓴다고 생각해 도전해보지 않았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쯤 소설 작법서를 읽고 배워서 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학기와 대학원생 시절에 취미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창작만이 주는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이 있었다.
 

작품에 소수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주류로 여겨지는, 사회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미 많아 변두리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오히려 새롭고 흥미로울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습작 시기에는 별생각 없이 SF의 흔한 주인공인 백인 남성 과학자를 등장시키곤 했는데, 수십 년 전에 이미 나온 작품들과의 차별점을 찾기 어려웠다. 중심만 살짝 옮겨봐도,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새롭게 쓰기 시작한 장편 소설과 기존의 단편 소설은 어떤 차이가 있나?

장편 소설은 단편 소설에 비해 좀 더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독특한 아이디어, 설정만으로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는 어렵다. 긴 이야기를 함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현재 소설가로서 더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계속해서 도전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전 작품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 형식, 인물 등을 새롭게 시도해보는 중이다. 지금까지 A 유형의 인물들만을 주로 써왔다면 다음 작품에는 B 유형의 인물을 등장시켜 보기도 하고, 인물 간의 관계를 다르게 써보기도 하고, SF의 여러 테마 중 도전해보지 않은 테마에 도전해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다양하게 잘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리라 생각한다.
 

과학의 진보가 자유로운 상상에 대한 제약으로 느껴진 적이 있는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상상력이 등장하는 것 같다. 수십 년 전에 글을 써본 SF 작가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신의 에세이 ‘나는 왜 SF를 쓰는가’에서 인간이 대륙, 섬, 심해, 태양계 행성 등 자꾸 미지의 장소를 탐구해서 그곳들의 비밀을 밝혀내는 바람에 오히려 소설 속 상상의 장소가 아주 먼 우주, 먼 미래, 평행우주와 같은 곳으로 밀려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걸 보면 제약이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또 20세기 SF보다 21세기 SF가 훨씬 더 재밌고 가깝게 느껴진다. 시대별로 다른 작가들의 고충이 있는 듯 하다.
 

미래 계획

차별 없는 과학자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사회와 포스텍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포스텍에 대한 좋은 기억도 많지만, 당시 주류와 다른 의견을 학내에서 자유롭게 전개하기 힘든 분위기 때문에 답답했던 기억도 많다. 자신이 틀릴 수 있고 무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태도가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학창 시절 성적이 좋았다고 해서 전공 과목 외의 세상에 대해서도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한 분야에서의 탁월함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증명해주는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람과 사회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고 여기는 태도가 결국은 타인에 대한 포용력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종류의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인가?

올해는 에세이를 쓸 생각이다. 창작과 독서, 자료 조사의 과정이 어떻게 긴밀하게 이어지는지 생각하다 보니 대학원생 때 연구 하던 기억들과도 이어졌다. 마치 연구하듯, 공부하듯 소설을 써 나가는 일에 대해서 에세이를 써보려고 한다.
 

소설가 이외에 과학 커뮤니케이터나 과학 철학자로서 활동할 계획이 있는가?

과학 논픽션은 매우 흥미로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당장은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문학 장르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나중에 언젠가 과학 논픽션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오히려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기술 개발, 연구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의 주류일 때가 많다. 물론 대학원생이 받는 부당한 처우 등 개선돼야 할 점이 많지만, 사회에 나가서 얻을 소득이나 교육 수준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신이 속한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스스로가 아는 세상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아가면 좋을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단지 ‘베푸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에 기여하는 연구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인간 바깥의 자연, 우주, 규칙을 탐구하는 과학 자체도 매우 중요하고 멋진 일이지만, 지식을 지닌 전문가로서 우리의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방법도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