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유아용 TV프로그램 주인공 텔레토비의 공통점은? 떼거지로 몰려다니고, 종종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단다. 그리고 빈둥거리는데다가 지능이 그리 높아보이지도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배도 나오고 자기네들끼리 뭔가를 결정하고는 엄청 좋아한단다. 어느 나라고 정치인은 가벼운 농담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조롱거리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좀 심각한 편이다. 유머의 수준을 넘어서 경멸의 대상이다. 심지어는 생명을 잉태하는 성스러운 ‘정자’마저도 정치인과의 공통점이 있다는 게 한국인들의 생각이다. ‘인간이 될 확률이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는.
부끄러운 소식은 얼마 전 외신을 통해서도 들어왔다. 뉴질랜드의 한 셔츠판매 회사가 판촉용 텔레비전 광고에 한국의 정치인들이 서로 옷을 잡아당기고 주먹을 날리는 장면을 사용했다.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은 ‘당연히’ 현지 광고표준불만처리위원회측에 ‘문제의 필름이 한국 정치와 한국국민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현지 한국인 사회를 모욕했다’면서 규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은 ‘이 필름이 한국 국민이 아니라 정치가들이 사나운 꼴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광고로 사용됐다는 광고제작사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거였다. 결국 광고는 허용됐다.
경멸과 조롱거리로 전락한 정치계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국민들로부터는 경멸당하고, 외국에서는 조롱거리가 되는 수준낮은 집단의 대명사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정치가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치를 혐오한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단 한순간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정치를 단지 강 건너 불구경 하면서 냉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선거에서 기권하는 것도 하나의 의사표현이라는 얘기도 하지만, 한국의 정치상황은 그 기권마저도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이용한다.
정치권은 지금 소용돌이치고 있다. 내년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또, 헌법재판소가 현행선거구제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그에 앞서 기탁금제도도 철퇴를 맞았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국민들로서는 이번이 기회일 수 있다.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정치,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10월 25일 치러진 재보선에서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세 곳 모두를 석권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과반수에서 단 한석이 모자라는 ‘힘있는’ 야당이 되었다. 이회창 대세론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이고, 선거를 향한 발걸음은 빨라질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으로서는 패배가 뼈아플 것이고, 이른바 ‘대권’을 꿈꾸는 주자들은 각개약진을 시도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는’ 레임덕 현상도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역에서 1%대의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자민련도 김종필 총재와 김영삼 전대통령이 손을 맞잡는 ‘반김대중 비이회창’ 보수연대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정치의 방향을 찾아보면서 지금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있어야 내일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정치가 유머의 대상은 되더라도 경멸의 조롱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은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이미 1인 2표제에 대한 논의는 진행중이다.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기존 정당에 다시 투표하는 현상을 흔히 ‘사표심리’라고 분석한다. 후보나 공약은 마음에 들지만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때 차선을 선택하는 경향은 진보정당의 정치권 진입을 막아온 장벽이었다. 그러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이같은 불합리를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정당 내부의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복원도 필요하다. 얼마전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은 ‘당이 소수의 주류들에 의해 운영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심지어 공천같은 현장대의원들의 선택이 반영되어야 하는 경우마저도 ‘소수’에 의해 결정된다.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의사결정구조가 정착되면 독단적인 정당운영의 폐해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원회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물론 이는 정치인들이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일이겠지만, 정치에서 ‘돈’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보스 정치’로 표현되는 한국정치의 아킬레스건도 그 출발점은 돈이다. 선거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현실(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지역구별로 20~30억원이 든다는 것이 일선 정치부 기자들의 객관적 분석이다)에서 그 돈을 마련할 힘을 가진 보스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투명한 후원회를 강화해서 각각의 정치인들이 보스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후원해주는 수많은 후원자(유권자)들을 의식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전문성 강화도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원보좌관들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어차피 의원을 전문가집단에서 뽑을 수 없다면 그들을 보좌하는 사람들이라도 전문적 식견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국회의원은 한사람당 3~4명씩의 보좌관을 거느리고 있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경조사를 챙기고 일정을 관리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상임위별로 보좌관 풀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우 환경분야 전문가와 노동분야 전문가를 보좌관 풀로 묶어서 각 의원들이 요구하는 정책을 연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상임위별로 5명 정도와 각 정당별 전문위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치의 감시자들인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난 여름 민주당이 출입기자들에게 휴가비 명목으로 1인당 30~50만원 정도씩을 뿌린 일이 ‘조용한 논란’이 되었다. 그들 스스로가 연루된 언론들이 입을 다물면서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한국의 정치와 언론의 유착관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민주당의 출입기자만 하더라도 200명 가량이 되니까 그 돈은 상당한 규모이다. 더구나 휴가철 한차례로 끝나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으므로 규모는 더 커진다.
한나라당도 다르지 않다. 추석 때 출입기자들에게 떡값을 돌린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역시 ‘작은 곤욕’을 치렀다. 이같은 일괄적인 촌지 지급보다 더 큰 문제는 개별적인 관리이다. 이른바 누구누구 장학생으로 불리는 기자관리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당에 있을 때 수많은 기자들에게 수시로 ‘용돈’을 주면서 관리해 언론계나 정치계에서는 그들을 ‘김영삼 장학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감시를 해야할 언론인들이 정치권과 유착하는 관행을 깨지 못하는 한 정치개혁은 힘들다.
진보정당의 역할도 필요하다. 지난 총선에서도 그랬고,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해 총선에서는 울산 북구와 경남 창원을 선거구에서 거의 당선권에 가까운 성적을 내기도 했다.
이들이 현실정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의 마인드도 바꿔나가야 한다. 울산 북구 선거에서 패배한 원인은 영남권 한나라당 싹쓸이라는 지역감정 바람도 있었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언론에서 제기능을 못하는 국회를 빗대서 ‘식물국회’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때 일부 환경단체에서 ‘인간에게 크나큰 도움을 주는 식물을 모욕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지금 정치권은 ‘식물’처럼 자라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꾸어 나가는 일은 정치권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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