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윤리의 문제
과학기술과 윤리의 문제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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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건들 중 하나가 과학 기술과 윤리의 문제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과학기술이 일반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음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사태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며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인간의 난자와 체세포의 핵을 이용한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인간배아줄기세포 제조’와 이 연구를 최초로 수행한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바탕을 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일견 과학기술 그 자체는 가치판단이나 윤리적인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출발이 그러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과학기술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과학기술도 가치판단이나 윤리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이미 자명해졌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연구하는데 있어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연구결과와 그 결과의 활용 및 응용이 인류에 미치게 될 영향이 얼마나 윤리적이며 현 시점에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연구과제의 수행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이루어졌는가의 문제이다. 지금 한국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논란의 초점은 후자에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개인의 신념이나 종교, 사회적인 관습 등 다양한 가치체계에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 있는데 반하여, 후자의 문제는 대단히 현실적이며 구체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연구가 정당한 방법으로 수행되었느냐 하는 것은 과학기술계 모든 연구실에서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특히 현재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연구대상이 그 자체로서 존엄성을 지닌 생명체인 동시에 연구 수행과정에 필요한 많은 것들이 생명체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연구자들이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주체이자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기술의 속성상 연구결과나 연구의 수행과정에서 기존의 상식이나 윤리, 도덕의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의 발생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구의 결과에 대한 윤리 및 가치적인 측면에 무심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연구 수행과정에도 마땅한 윤리적인 측면의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인할 수 없다. 연구 수행과정의 정당성은 연구결과의 정당성 확보에도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는 그동안 연구 수행과정에서의 윤리적인 측면을 소홀히 하거나 경시해 왔다. 이는 서구의 현대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단기간에 현 수준에까지 올려놓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해 오는 동안 좋은 연구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결과 위주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수행한 대부분의 연구가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는 많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우리의 연구수준이 국제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어 서구 여러 선진국에서의 연구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때로는 국내의 연구결과가 이들 나라의 일반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연구 수행과정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법으로 행해져야 할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연구 수행과정에서의 윤리성이 국내에서만 통용되었거나 아니면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 국제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에 대하에 제기된 윤리문제에는 일부 문화적인 충돌의 성격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연구가 좀더 높은 수준에 오르게 되고,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연구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때에는 우리의 연구 수행과정의 윤리적인 측면이 국제적으로 용인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수행한 연구들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이번 사건은 과학기술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성 확보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새로이 인식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과학기술계의 연구자들과 관련 정부 부처는 광범위한 논의를 통하여 국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연구윤리 규정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의 교과과정에 연구윤리 과목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의 과학기술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무쪼록 이번 사태가 잘 마무리됨으로써 한국의 과학기술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