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참사와 과학도의 자세
미국 대참사와 과학도의 자세
  • 승인 200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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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일어난 미국에서의 테러사건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신문, 방송 등의 언론에서 이번 사건의 의미와 앞으로의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등에 미칠 영향 등을 조심스럽게 예견하고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바라만 보고 있는 우리도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서방세계와 이슬람간의 문명의 충돌까지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어쨌든 일부 과격한 이슬람교도의 소행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이슬람교가 이런 테러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슬람교도 다른 세계 4대 종교처럼 사랑과 평화가 기본 메시지일 것이다. 종교 성전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교리들 중에서 일부 광신도나 사이비무리들이 교리를 완전 왜곡하여 그들만의 성전을 구축하고 많은 무고한 사람을 포섭하여 결국은 그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무리들을 경계하고 또한 응징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할 지라도 이슬람교에 대한 본질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대부분의 선량한 신도들을 증오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번 일은 또한 세계경찰을 자처해 오며 세계 곳곳에 그 영향력을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발휘해 온 미국에 대한 일부의 반발심에 의한 사건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은 잘 알려진 대로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민족이나 종교가 다른 국가나 집단과의 충돌을 야기할 수 있다. 소수민족이나 다른 문화, 종교집단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다소 부족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의 기준이 곧 선이요 민주주의라는 오만함이 그 동안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번 극악무도한 테러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인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미 전쟁을 선포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등이 표적이 될 것이며 미국이 당한 것 이상으로 철저히 보복을 할 것이다. 모든 전쟁에서 보아 온 것처럼 실제 전쟁의 주된 피해자는 권력자나 군대도 아니고 그 나라의 무고한 민간인들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테러와 직접 상관이 없는 부녀자와 노약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인명을 다시 앗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테러에 대한 대응방법도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학문을 하는 지식인일수록 어렵고 복잡한 상황이 닥쳤을 때 냉철해야 하며 사태를 바로 인식하고 또한 일부 감정적인 대중을 위해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정치, 역사, 문화, 종교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섞여 있는 사태에 올바른 사고와 판단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테러에서도 본 것과 같이 현대문명의 절대적인 이기인 항공기가 가공할 무기로 사용될 수 있고 110층 짜리 현대건축의 결정체가 대량 인명살상의 원인제공이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자연과학도나 공학자들도 이제는 자신들의 테크놀로지가 인류, 사회에 미치는 책임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몰두하면서 연구 데이타 자체에 대한 의미만 생각할 뿐 이것이 인류에 행복을 가져다줄지 불행을 가져다줄지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다. 과학과 공학의 무한한 발전에만 매달려 온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이제 지나온 역사나 발자취를 한번 뒤돌아 볼 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좀더 마음을 열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 이러한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와 다른 의견도 귀담아 듣고 다른 사람의 실수도 인정하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때에도 가시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즘 교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 자칫 위험 수위를 넘겨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고 자기 주장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관철시키려 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실력행사까지 불사할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것은 또한 작은 의미의 테러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대학의 특성상 이공계열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학문적, 문화적 영양분을 고루 섭취하는데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또한 남들을 이해하고 민주적으로 토론하며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데 미숙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과 공학의 학문성취도를 높이는 것과 더불어 조화있는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포항공대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결국 앞으로 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지도자로서 살아갈 것이다. 지도자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어야 한다. 이번 테러사건에서 보듯 일부 편협된 사고를 가진 지도자들이 그들의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