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이 포스코를 먹여 살리는 날
포스텍이 포스코를 먹여 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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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0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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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포스텍(당시 포항공대)이 설립되는 데 모체가 된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의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68년 4월 1일에 창립된 포스코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관 종합철강회사로 낙후됐던 한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포스코는 설립 이후 제철소의 조기 건설 신화와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이루면서 창사 이래로 계속 흑자를 냈다. 설립 2주년 기념일인 1970년 4월 1일 포스코는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착공식을 거행했다. 그 뒤 3년에 걸친 오랜 노력 끝에 포항제철은 1973년 6월 19일 연간 103만 톤의 조강생산 능력을 갖춘 제1기 제철소 설비의 건설을 완료했다. 설립 초기부터 포스코는 일본 기술을 도입해 추가 제철소 설비 건설과 생산 확대를 반복하며 지속해서 성장했다. 제철소 규모 확대는 물론 제1기 제철소 설비에서 결여되어 있던 연속주조법과 복합 취련을 추가로 도입해 놀라운 기술 진보를 이루었다.
포스코가 설립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하자 애초에 기술을 제공했던 일본은 한국으로의 기술 이전을 경계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포스코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섰다. 우선 포스코는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와 기술 협력을 추진하고 제철 산업이 언젠가는 사양 산업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제철산업 이외의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경영다각화를 모색했다. 무엇보다도 포스코는 다른 나라에만 의존한 채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하지 않고는 철강 산업의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포스코는 여러 수단을 동원해 경영 다각화와 자체 기술개발을 시도했지만, 금속공학 계통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고급 두뇌를 흡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1984년 당시 포스코가 확보했던 박사급 인력은 고작 14명이 전부였는데, 그나마 10명은 회사 자체에서 대학원을 보내 박사로 양성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포스코는 경영다각화와 자체 연구개발에 필요한 각 분야의 연구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대학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초창기 포스코는 회사의 자체 기술 개발과 직접 관련이 있는 금속, 재료, 기계, 전기/전자, 계측제어, 화공, 산업공학, 전자계산 등 8개 분야의 학과를 설립하려고 했다. 우선 금속공학과에서는 철강 가공 및 재료, 표면처리 및 특수강 분야에서 회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재료공학과는 슬래그와 같은 부산물을 활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으며, 전기/전자는 압연기 구동부의 운전 효율을 높이는 데 활용되고, 계측제어학과는 조업 자동화에, 기계과는 소성 역학 등에, 화공과는 환경 문제 해결에, 산업공학과는 관리 업무의 최적화에, 전자계산학과는 제철소와 본사의 전산화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했다.
애초에 포스코는 기초과학인 물리, 화학, 수학과는 학교 운영이 정상 궤도에 올라간 뒤에 2단계 사업에서 개설하려고 생각했다. 쇠와 관련이 없는 생명과학 분야의 학과 개설은 처음에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현재 포스텍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여러 학과의 모습은 1985년 8월 김호길 초대 학장이 부임하면서 새롭게 바뀐 것이었다.
포스코의 박태준 회장이 포스텍 설립을 계획했을 때에 이에 대해 대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포스코가 자체의 힘만으로 대학을 설립하려고 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회사가 대학이 자립할 때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계속 흑자를 내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 박태준 회장은 적어도 30년 동안 포스코가 계속 흑자를 낸다면 능히 대학을 설립하고 지속해서 지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학을 설립한 이후 박태준 설립이사장은 앞으로 30년 동안 포스코가 포스텍이 재정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이후에는 포스텍을 나온 졸업생들이 MIT에서와같이 자신들이 졸업한 대학을 지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박태준 설립이사장이 포항가속기를 건설하고자 한 것도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깔렸었다.
김호길 초대 학장은 살아생전에 “대학 설립 초기에는 포항제철이 포항공대를 먹여 살리지만 30년 뒤에는 포항공대가 포항제철을 먹여 살리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포스텍이 설립된 뒤 30년 동안 다행스럽게도 포스코는 계속 흑자를 냈다. 설립되고 50년 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한 성공적인 기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기업의 역사를 보더라도 100년 이상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기업은 흔하지 않다. 포스코가 100년이 되기 전에 포스텍이 포스코를 먹여 살리는 날은 과연 올 것인가? 포스코가 창사 50주년이 되고, 포스텍이 설립된 지 30년이 넘은 현시점에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볼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