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그만두고 기자가 되려 합니다
기자를 그만두고 기자가 되려 합니다
  • 하현우 기자
  • 승인 2017.09.06 22: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와 창작자는 닮았다. 혹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명백한 사실을 주로 다루는 기자와, 세상에 없던 것을 상상해내는 창작자가 어떻게 닮을 수 있느냐고.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스스로가 중요하게 여기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같다고. 단지 출처가 현실이냐 허구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한때 작가를 꿈꿨다. 내가 만든 세상에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펼치는 일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중학생 때 매일 컴퓨터에 앉아 원고지 스무 장씩 채워 넣었던 기억, 습작이 담긴 USB를 잃어버리고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슬펐던 기억이 여전히 뚜렷하다. 아직까지도 그때만큼 오래도록 몰입했던 활동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유일한 꿈은 아니었다. 마지막에 선택한 진로는 연구자였다. 자연히 발걸음은 우리대학을 향했다. 대신,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새겨뒀던 조건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취미로든 어떤 형태로든 글과 가까운 삶을 살자는 조건이었다.
나는 그 조건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글을 쓰는 단체 중 그 어느 곳도 대적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멋지다고 할 수 있는 신문사의 존재를 알게 됐고, 망설임 없이 수습기자가 됐다. 주먹구구로 쓰던 글이 눈에 띄게 깔끔해져 갔고, 낯선 사람과의 인터뷰도 이제는 퍽 친근한 일이 됐다. 안보 문제로 칼럼을 쓰거나 대통령 후보와의 서면 인터뷰 같은 굵직한 기사에 참여했던 일은 아직도 얼떨떨하지만 말이다.
2년 가까이 숨차게 기자 활동을 하면서 하나의 생각이 점점 뚜렷해졌다. 내가 어떠한 이야기를 쓰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활동을 원했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상상해낸 이야기’를 쓰고 싶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로 고민을 거듭하면서, 한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머릿속에 가득한 자질구레한 상상들 중에서 멋진 녀석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했다, 특종을 찾는 기자처럼 말이다. 내 머릿속 세계에서 나는 또 한 명의 기자가 되어, 흥미롭고 중요한 상상을 폭로하는 탐사보도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두 명의 기자가 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두 세상의 기자직 모두 결국엔 나의 취미 혹은 부업일 뿐이지 않은가. 훌륭한 연구자가 되고 싶고, 가능한 한 재밌는 이야기도 쓰고 싶어 하면서, 학생기자 활동까지 병행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과한 욕심임을 묵묵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를 포기했다.
열정적이고 멋진 동료들과 함께, 내게는 과분한 멋진 일을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다 보니, 가중된 업무에 지쳐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여전히 가슴이 아리고 미안하다. 자기 욕심에 동료에게 업무를 떠밀고 떠나는 모습이 떼쓰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책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기사 하나에, 도표 하나에, 표현 하나에 밤을 지새우는 신문사의 학생기자들 모두는 포항공대의 밤하늘, 폭풍의 언덕 너머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들이다. 이 빛이 언제까지나 힘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과 함께 나의 마지막 기사를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