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목표를 이룬 후에는?
큰 목표를 이룬 후에는?
  • 명수한 기자
  • 승인 2016.12.0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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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능을 치고 대학에 들어온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불현듯 세월의 빠르기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랐던 것은 두 살 어린 내 동생이 이제 수능을 치고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다는 점이다. 19년간 수능이라는 이름의 단 하루만 보고 살았던 지난 시간, 사실 그때만 해도 정말 수능을 치고 나면 모든 걱정거리가 다 끝나고 해결될 거라고 막연히 믿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수능 공부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시련을 넘은 지 2년, 내 생활은 날로 게을러지는 것 같다.
수능 하루 전, 동생에게 응원 전화를 한 후 잠깐 생각에 빠졌다. 수능이 도대체 뭐길래 나를 그토록 집중하고 빠져들게 했던 것일까? 솔직하게 지금의 내 삶을 말하자면, 온 시간표가 과제, 수업 그리고 조 모임으로 덕지덕지 칠해져 있다. 너무나도 바쁘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범생의 자세로 공부만 하며 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전체 수업의 40% 정도는 집중하기보다는 적당히 들어주면서 딴청을 피우고 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수업을 준비하거나 아침을 챙겨 먹고 있지도 않다. 주말이면 일상화된 늦잠 때문에 침대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것들을 종합해서 말하자면 너무나 바쁘지만 게으른 사람의 전형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중고등학생 때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믿기지 않겠지만, 매일 아침 6시 30분에는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고, 신문을 꼬박꼬박 읽었다. 7시면 대문을 박차고 나가 등교를 하고 하루 수업의 90%는 풀 집중 상태로 필기를 챙겨 적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노력해봐도 불가능한 초롱초롱한 눈을,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도 가지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가 게으르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을 텐데 왜 그땐 그럴 힘이 났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수능이라는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나의 행동을 바로잡고 있었던 것 같다. 현재의 나에게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토록 게으른 삶을 사는 것은 그 목표가 수능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뭔가 수능제도를 예찬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수능제도가 아주 멋지고 좋은 제도라는 것이 아니다. 수능이 끝난 이후 한 사람의 생활방식이 어디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의 예시를 들고 싶었다. 아마 올해에 수능을 본 친구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갑자기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사라져 버리고, 일단 수능에 대한 보상심리로 한참 놀고 싶은 그 순간 말이다. 물론 힘든 수능을 치른 만큼 한동안 쉬어주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보상심리를 통제하지 못한 상태로 대학에 온다면, 생활 속에서 그 대가를 치를 확률이 매우 높다. 2년 동안 대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게으름과 귀찮음이 지배하는 대학생활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대학생활이 어떻건 개인의 문제인 건 맞지만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 힘들게 얻은 열매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썩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또한, 수능을 치른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말고사를 끝낸 대학생과 공무원 시험을 끝마친 고시생 등도 시험 이후의 생활태도를 바로잡지 못하면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서 큰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눈앞의 큰일을 끝냈더라도 이후 다가올 자신의 명확한 목표 아래 보람찬 생활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