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시비(是非)는 학생들의 단어에서 알 수 있다
정책의 시비(是非)는 학생들의 단어에서 알 수 있다
  • 신용원 / 컴공 13
  • 승인 2015.10.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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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민심을 알기 위해 백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민요를 조사했다고 한다. 조정에서 시행하는 정책들을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은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민요에 담긴 의미를 읽고 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학의 ‘민요’는 무엇일까?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조선 시대처럼 힘들여 조사할 필요도 없다. 학생들과 직접 부대끼며 지내지 않더라도, 학내 게시판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통해 동향을 알 수 있다.
  셧다운제(심야시간 인터넷 게임 이용 제한 정책), 학생식당 민영화(지곡회관 식당 위탁운영 추진 계획). 지난 학기부터 학내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우리 대학 정책들이다. 괄호 앞에 적은 단어는 학생들이 자유게시판 등을 통해 반대 의견을 낼 때 사용했던 단어들이고, 괄호 안의 단어는 학교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정책명이다. 처음 셧다운제를 시행하기 전에 대학은 셧다운제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심야시간 인터넷 게임 이용 제한 정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주기를 당부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학이 시행하는 긴 이름의 정책이 셧다운제와 본질에서 같다고 생각하며, 셧다운제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했다. 학생식당 민영화 또한 대학은 식당 운영 적자, 시설 노후화, 음식 선택의 폭 확대 등을 근거로 들어 지곡회관 식당을 외부 업체에 맡기기를 원했으나, 정작 실수요자인 학생들은 대학이 내세운 근거에 공감하지 못했고, 민영화의 실패 사례를 떠올리며 이를 암시하는 ‘학생식당 민영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처럼 정책의 본질을 가리려고 해도 학생들이 사용하는 단어에서 부끄러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학이 잘못된 단어 사용을 통해 진실을 감추려고 들면 들수록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내가 이런 대학에 살고 있다니...’ 등의 생각을 하며 대학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뜨린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현실을 꼬집는 ‘헬조선’이라는 신조어의 탄생이 우리 대학에서는 ‘헬스텍’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대학이 셧다운제와 학생식당 민영화를 더는 추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마음, 즉 ‘민심’을 흉흉하게 만든 주범이 사라진 것에 기뻐했다. 대학과 학생들 간에 있었던 불필요한 소모전을 끝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대학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 풀어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은 학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결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