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를 보면서 찾는 자유
까치를 보면서 찾는 자유
  • 박태수 / 화학 14
  • 승인 2015.06.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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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우들이 봤듯이 겨울부터 해서 지금도 우리대학 곳곳에서 까치가 보인다. 특히 이른 봄 즈음에 해 지기 전에 폭풍의 언덕과 국제관을 바라보면 수십 마리의 까치들이 풀 주위에 모여 있거나 줄을 이루어서 서있는 등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최근에도 화학관 입구에서 까치둥지가 있는 것만 같은 아기 까치의 소리를 들으면서 마치 우리 학교의 상징인 듯 익숙해짐을 느낀다. 포스테키안 대부분이 학업 등으로 여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까치처럼 자유로우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학교에서 볼 수 있는 까치는 대부분이 배가 통통하게 나와 있고 배 부분이 하얗고 검은색을 띄고 있다. 까치의 색채부터 보면 하양과 검정의 극과 극의 색이 이루는 고전적인 조화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까치의 검은 색을 보고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의 안정을 줄 뿐만 아니라 까치의 배를 보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생존을 하면서 사는데 배부르게 산다는 것이 부럽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 학교가 자연적이어서인지 먹이가 많아 까치들에게는 좋은 환경일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학생 시절을 지나면 수많은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비가 된다.
사회적으로도 까치는 서로 떼를 지어 이동하고 또한 우리들이 까치 근처에 있어도 종종 도망가지 않을 때도 있다. 서로가 같이 모여 다니고 생존의 위협과 같은 걱정이 없이 산다는 것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까치보다 부족함이 많지 않을까. 실험을 할 때에도 조교나 교수님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고 심지어 봉사를 할 때도 지시자의 말을 지켜서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까치는 원하는 곳이든 날아갈 수 있다. 떼를 지어 함께 나아가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자유롭게 날아다닌다는 인간의 사회 구조와는 다른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부럽게 느껴진다.
더욱이 까치가 언덕에서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 대부분의 일상은 78개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직선으로 공학관들이 나열된 길을 걸으며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는 오아시스에서 단조로운 줄을 서서 기다린다. 까치들의 눈에서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여우와 두루미에서 여우가 보는 모습이 아닐까? 물론 탈피하라는 것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신세한탄을 하면서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일상을 되돌아보고 까치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듯이 나무보다 큰 숲을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인간 자체가 동물과 다른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보통 해석한다. 그럼에도 까치를 보면 오히려 인간보다 더 많은 자유를 가진 동물이지 않을까하는 사색에 잠긴다. 장 폴 사르트르가 “인간은 자유 그 자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일정에 힘들어 치여 살고 있다면 까치를 생각하며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까치를 보기 힘들 텐데, 까치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우리에게 자유를 찾게 하는 희망의 동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