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돌이 인생
청암돌이 인생
  • 김다솜 / 생명 13
  • 승인 2015.02.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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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을 마친 겨울 방학, 슬슬 밀려오는 심심함과 함께 학교생활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RC, 생명과학관, 화학관, 동아리방, 그리고 특히 아직 사람들에게 ‘청암’이라고 불리는 박태준학술정보관에 참 정이 간다. 그래, 나는 1학년 1학기 말쯤부터 청암에서 모습을 자주 나타내는 청암돌이가 되었다. (본인이 여학생임을 잊지 않기 위해 청암순이라는 말을 쓰고 싶긴 하지만 이 말은 뭔가 입에 붙지 않는다.)
나의 청암돌이 인생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전공 서적들의 묵직함이다. 전공 책부터 노트북까지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 싫은 것들을 죄다 청암 전자사물함에 쌓아놓고 살아가는 터에 청암에 안 가는 것이 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침 일찍 청암에 가면 정말 아무도 없어서 마치 그 커다란 건물을 혼자 쓰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맛보며 터줏대감처럼 앉아있을 수 있는데 이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다. 종종 밤새고 책상이나 소파를 침대 삼아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나의 즐거운 기분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청암돌이들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오후 어중간한 시간에 청암에 들어서면 친한 사람 몇 사람쯤은 항상 있다. 그 중에 항상 인사를 나누던 몇몇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한다(여기서 몇몇은 꼭 누구라고 언급하지 않아도 만약 그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본인이라는 걸 단숨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집중력이 내리막길을 타고 떼굴떼굴 굴러 떨어지고 있을 때쯤에 귤 나눠먹고, 초콜릿 나눠먹고, 몰래 간식 놓고 오고, 이석 사유서에 낙서해놓고 모른척하고, 6층 에서 수다 떨고, 공부하러 간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도 공부 시작하겠답시고 뜬금없이 기숙사 청소를 하거나 쌓여있는 종이뭉치 정리를 하고 있는 기숙사에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엉덩이 붙이고 공부를 시작하기라도 한 청암에서의 내 모습이 훨씬 낫다. 이런 나에게 우리 과 친구들 중에,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 중에 청암돌이가 꽤 존재한다는 사실은 엄청난 행운이다.
청암에서 GSR이 아닌 열람실 쪽에 자리를 잡으면 비록 내가 혼자만의 공부를 하러 청암에 왔지만 매일매일 옆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옆 사람들이 내 옆을 지켜주는 것 같고 같이 공부하자고 응원을 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청암에 들어선 순간 누가 와있나 슬쩍 둘러보는 것은 습관이 되어버렸고, 평소에 반갑게 인사 나누던 사람이 안 보이면 왜 안 오나 싶고,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혼자 정을 붙여버렸다. 다른 청암돌이들도 나와 같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어 학교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평소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움이 먼저였는데, 이렇게 생각을 쭉 적어나가다 보니 고마움이 보태져야 할 것 같다. 다들 고마워요! 그리고 다음 학기에 청암에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