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
미래학
  • 민주홍 기자
  • 승인 2012.11.2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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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의 역사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업계에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애플에서부터 시작된 스마트폰의 등장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고, 이후 세계 모바일 시장은 급격하게 변화, 성장하게 됐다. 이로 인해 대중들의 삶이 크게 변화한 것은 물론이며, 또한 모바일 시장의 변방에 있던 애플은 남들보다 한 발자국 먼저 나가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면서 단숨에 모바일 시장 한 가운데 우뚝 서게 됐다.
눈을 뜨면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이 기술은 급격히 사회를 바꾸고 있다. 어떤 기술이 나올지 혹은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할 방법은 없을까? 이번 기획특집에서는 미래를 예측해보고 미래를 한 발짝 먼저 준비하는 미래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 세상에서 나의 최후는 언제일까?”, “10년 후 나는 무엇이 돼 있을까?” 사고하는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궁금해 한다. 미래의 모습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먼 옛날부터 존재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있던 고대에는 예언자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럼에도 과거 대부분 인간의 삶은 비슷했다. 일생동안 세상의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몇 년 후의 미래를 알 수 있을지라도 단순한 궁금증의 해소를 넘어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며 과학과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세상은 점차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합리적인 예측이 필요하게 됐고, 이로 인해 미래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래학이란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미래 변화에 대한 예측을 목표로 하는 만큼 사회과학ㆍ자연과학ㆍ공학 등 수많은 학문의 융합적인 관점에서 미래학의 연구 방법은 발전돼 왔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방법은 1907년 길피란(C. Gilfillan)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해, 1944년에 플레히트하임(O. K. Flechtheim)이 ‘미래학(Futurology)’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며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허만 칸(Herman Kahn) 등의 여러 저명한 미래학자에 의해 미래예측에 관한 연구방법이 다듬어 졌으며, 이를 기반으로 미래학 발전의 틀이 마련됐다.
한 때, 미래학은 계속되는 냉전의 여파로 새로운 전쟁무기 개발의 공학적 예측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기도 했으나, 1960년대 들어 환경문제ㆍ식량문제ㆍ인구문제ㆍ기아문제ㆍ핵문제 등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미래학자들은 지구상의 여러 위기에 대한 예측과 대응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1961년과 1966년에 각각 설립된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와 세계미래학회(World Future Society)와 같은 다양한 미래연구소의 설립을 유도했다. 이로써, 미래학은 점차 독립된 학문으로 정착해 갔다. 특히, 1968년 이탈리아 로마에 설립된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은 과학자ㆍ경제학자ㆍ기업가 및 여러 국가의 전ㆍ현직 국가원수 등이 참여하며,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미래연구 기관이 됐다. 1972년 로마클럽에서 발간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는 부분별한 경제발전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분석해 환경 문제에 관한 전 세계인들의 인식 전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에는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가 등장했다. 그는 1970년에 ‘미래의 충격’, 1973년에 ‘미래쇼크’, 1980년에 ‘제3의 물결’, 1991년에 ‘권력 이동’ 2006년에 ‘부의 미래’ 등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한 도서를 꾸준히 서술하며,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래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제3의 물결’에서 과거의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정보화혁명이 향후 20~30년 내에 이뤄질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현실이 되며 미래학의 예측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1990년대 이후 선진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국가의 중장기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미래학자들과 미래 시나리오 전문가들은 보다 영향력 있는 활동을 하게 됐다. 실제로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의 경우 미국 국무부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저서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일반인에겐 다소 낯설지 모르지만 짐 데이토(Jim Dator, 하와이대학교 미래전략센터 소장), 윌리엄 하랄(William Halal,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 ‘메가 트렌드(Mega Trend)’를 서술한 존 나이스빗(John Naisbitt) 등도 현 세대의 세계 미래학계를 주도하는 학자들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미래예측과 미래전략 추진을 위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미래기획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학계에는 1968년 ‘한국 2000회’라는 명칭으로 설립된 한국미래학회, 민간 연구기관인 한국미래학연구원, 한백연구재단 등이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故 이한빈 14대 부총리는 한국미래학회 초대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미래학 연구를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학 연구와 교육은 활발하지 못했다. 미국에선 이미 1970년대에 미래학을 대학의 정규 교육과정에 도입을 했으나, 우리나라에선 최근에 와서야 카이스트에 미래전략대학원 설립이 추진되는 등 미래학 연구가 점차 활발해지려는 추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