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이뤄진 제9차 개헌 이후, 올해 39년 만에 제10차 개헌안이 논의됐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발의돼 지난 7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국민의힘 소속 의원 다수가 본회의에 불참하면서 투표 불성립이 선포됐다. 이는 이튿날인 8일 본회의에서 재상정될 것이 예고됐으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안건을 재상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제10차 개헌안은 사실상 무효화 됐다. 본회의 표결 전부터 개헌안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의 의견 대립은 팽팽했다. 안건 가결을 위해선 야당에서 최소 12표 이상의 이탈 표가 나와야 했기에 가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역시 제기된 바 있다. 본회의 불참으로 인한 투표 불성립에 대해 여야 간 갈등이 여전히 지속되는 가운데, 만일 성사된다면 39년 만에 헌법을 바꿨을 이번 개헌 논의가 지닌 의미를 되짚고자 한다.
제10차 개헌안의 주요 내용 및 쟁점은?
지난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6개 정당 소속 국회의원 187명이 공동 발의한 제10차 개헌안에는 총 3개의 주요 의제가 다뤄졌다. 첫 번째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계엄 상황 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것’으로, 계엄 선포 후 48시간 이내에 국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해당 계엄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지난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겨냥한 조항으로, 헌법 개정안 제안서에는 ‘위법한 계엄 시도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헌법에 명확히 마련할 필요성이 제기돼 발의했다’라고 설명돼 있다. 두 번째로는, 헌법 전문에 기존의 ‘4·19 민주 이념’을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으로 확대해 명시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제안서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4·19혁명에서 부마민주항쟁을 거쳐 5·18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발전했기에 민주주의 역사적 정통성을 반영하는 의미가 있다고 제안 이유가 명시돼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 간 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 의무를 명시하자는 내용 및 헌법 전문을 한글화하자는 요구 사항 등이 포함됐다.
제10차 개헌 타임라인
개헌에 대한 담론은 문재인 정부 시기 활발히 논의된 후 잠시 멈춰 있다가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 삼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인 2025년 4월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비상계엄의 반복을 막기 위한 개헌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드러냈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쟁점부터 차례대로 처리하자는 의견은 이번 개헌의 주요 기조로 작동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런 방향을 강조했고, 국회가 실시한 대규모 여론조사에서 약 68%의 응답자 또한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달 3일, 국회에서 개헌안이 발의됐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원내 6당 소속 국회의원 187명이 발의했으며, 7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공고했다. 이후 다음 달 3일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를 진행하기 위해서 5월 10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이 완료돼야 하므로, 5월 7일 국회 본회의에 개헌안이 상정됐다. 그러나 야당인 국민의힘은 시기와 절차를 문제 삼아 ‘졸속 개헌’을 주장하며 당론으로 개헌 반대를 결정하고 표결에 전원 불참했다. 개헌에는 재적의원 286명 중 3분의 2 이상인 191명의 찬성이 필요했으나, 결국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이에 우 의장은 5월 8일 오후 2시에 재표결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국민의힘의 다른 법안들에 대한 필리버스터 예고로 진행되지 못했다.
개헌안에 대한 주요 쟁점
이번 개헌은 단계적 접근을 통해 여야 합의를 끌어내고자 했으며, 실제로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여야 간 큰 이견이 없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맥락이 주요 쟁점으로 작용했다. 국민의힘은 개헌의 내용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의 ‘졸속 추진’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야당은 22대 국회 후반기에 여야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헌법 전문 및 권력 구조 개편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개헌안 내용 자체에 반대할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제기한 절차적 명분이 사실상 개헌 거부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여당의 추진 방식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재적의원 3분의 2와 국민 투표라는 높은 사회적 합의 수준을 갖는 사안인 만큼, 발의 전 단계에서 필수적인 논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비교적 소극적인 개헌 진행이 아닌 청사진 선언에 그쳤다는 점이 지적됐다. 또한, 이번 개헌 내용에 대해서는 계엄 관련 조항이 지나치게 엄격해 실질적인 긴급 상황에서의 국가 대응 능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또한 유신헌법 시기 도입된, △군인 △군무원 △경찰 등이 직무상 입은 피해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해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여겨지는 이중배상금지 제도의 폐지와 같이 필요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사안이 포함되지 못했다는 점 역시 지적됐다.
이번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해 국민투표에 부쳐졌다면 39년 만의 헌법 개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본 개헌안은 비록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지만, 12·3 비상계엄 및 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위기를 겪은 직후 헌법의 결함을 인지하고, 제도적으로 개정이 시도됐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앞으로도 개헌에 대한 논의는 종종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계엄에 대한 국회 규정 강화 △권력 구조 개편 △지역 균형 발전 △이중배상금지 규정 △민주화 운동 정신 명시 등의 시대적 과제에 대한 성숙한 합의를 통해 개헌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 1987년 개헌의 세대가 지금의 헌법을 만들었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세대가 다음 헌법의 방향을 요구할 차례이기도 하다. 개헌이라는 의제가 정치권의 다툼으로 소비되지 않고, 건전한 사회적 헌법적 합의로 완성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