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까지 해야 해?”
조정부 대회를 준비하느라 물집과 굳은살로 가득한 내 손을 보며 엄마가 한 말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훈련을 나가고 식단까지 챙기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는 내가 무슨 선수라도 된 거냐며 너무 과한 게 아니냐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조정부 친구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훈련하는지, 대회를 앞두고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는지 하나씩 설명하곤 했다. 나에게는 익숙한 일상이었지만, 엄마에게는 설명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이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세계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선 본문이 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각주다. 각주는 어려운 말을 풀고, 생략된 맥락을 보충하며, 독자가 글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돕는다.
내가 우리대학 신문사에서 맡은 임무는, 결국 각주를 다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대학에는 저마다 다른 일상에 관한 수많은 세계가 있다. 그리고 그 세계는 누군가에게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 있다. 나는 그 간격을 메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다양한 세계의 이야기를 가져오고, 몇몇 사람에게만 익숙했던 세계를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풀어내는 기자, 읽기 어려운 본문 곁에 조용히 각주를 덧붙이는 기자가 되고 싶다.
각주를 다는 일은 생각보다 더 큰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잘못 단 각주는 본문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고, 되레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더 오래 보고, 더 자주 의심하고, 더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일을 원칙으로 삼고자 한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여정을 시작해 본다. 이 여정의 끝에 봄 내음같이 향기로운 보람이 남기를 바라면서, 나는 이제 첫 각주를 달아 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