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5일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부활절이었다. 나 역시 천주교 모태신앙이기에 부활 대축일 미사에 참례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하면 무교 친구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진짜로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믿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과학고를 졸업하고 우리대학에 진학해 이공계 공부만을 해온 나 또한 직접 보지 않고는 믿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성경은 교리를 위한 것이며, 이를 실제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실존 인물인 예수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거나 눈먼 자를 치유하는 등의 기적을 일으켰다 믿는 것은 현대인, 특히 이공계 학생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왜 종교를 믿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과거의 종교는 통치를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 △석가모니 △공자 등 성인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읽지 못하는 어리석은 평민은 지배층의 말에 복종하게 된다. 자연을 이기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종교는 심리적 구심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는 과학이라는 언어로 자연을 이해한다. 자연을 두려워하며 종교에 기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 중 약 60억 명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온 평생을 돌아볼 때, 현대의 종교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두려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여러 불안과 절망을 안고 살아간다. 대학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자.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으나 공부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나에게 종교는 이런 나약한 나를 없애주는 개념이다. 천주교의 주된 가르침은 ‘절대 선인 하느님을 믿고, 비슷한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자’다. 즉, 하느님은 언제나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고자 하며, 그 결과는 내 행동과 하느님의 이끎의 합작으로 여겨진다. 그렇기에 천주교인은 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이 말한 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하며 현재의 결과를 신에게 떠맡긴다.
일련의 내용들을 깨닫게 된 것은 23년도 봄이었다. 당시 나는 무은재기념관 도로에서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반 학기를 입원해서 보냈고, 나머지 학기도 목발을 짚으며 살았다. 외향적인 나에게 좁은 병원 침대는 절망으로 다가왔지만, 그럴 때마다 성당의 신자들은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줬다. 이 경험으로부터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위험한 수술이 아니었고 단지 1년만 기다리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으나, 그 1년이 너무나도 불안하고 힘들어 결국 신에게 기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 나만의 확실한 신앙관을 갖게 됐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이 원하는 결과다. 나의 잘못도, 나의 공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이 글의 목적은 종교를 믿으라는 포교가 아니다. 내가 이공계에서 공부하며 종교에 느꼈던 의문과 이에 대한 대답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다. 인간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은 이 세상에 너무나 많다. 이 글을 읽는 나약한 누군가가 신이 아니라도 좋으니, 기댈 수 있는 무언가와 함께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