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활동 금지’ 학칙 제77조 삭제·개정은 멀었나
‘정치적 활동 금지’ 학칙 제77조 삭제·개정은 멀었나
  • 김수진, 한정우
  • 승인 2026.03.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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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은 학칙으로 학부생의 ‘대학의 승인을 받지 않은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해당 내용을 담은 학칙 제77조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라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고, 삭제하려는 움직임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시도는 번번이 무산돼, 현재까지 1986년에 제정된 형태 그대로 남아있다. 학칙 제77조와, 집회 승인에 관한 ‘학생활동에 관한 규정’ 제12조·제15조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우리대학 학칙 제77조 및 학생활동에 관한 규정 제12조와 제15조 전문

학칙 제77조는 명백한 기본권 침해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검열과 허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집회와 결사로 대표되는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고, 집회를 사전에 승인받아야 하는 우리대학 학칙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2007년에 이미 “대학생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학칙은 (중략) 사상과 양심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시정을 권고했다. 우리대학은 사립대학이므로 인권위의 조사·권고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인권위는 2022년 “대학 내 대자보에 대한 사전 승인 요구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학칙 제77조의 모호함도 문제가 된다. 이 조항만으로는 1·2호의 ‘정치적 활동’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3·4호는 더 모호해 사실상 어떤 학생활동이라도 제한할 수 있다. 무엇을 처벌하려는지,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법은 해석의 여지가 넓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

▲학칙 제77조 삭제·개정과 관련된 타임라인

학생지원팀·김성근 총장 “사문화된 조항”… 학생활동은 지금도 ‘위축’

학생지원팀은 “1990년 이후로 해당 조항을 근거로 처벌된 사례가 없다. 실질적인 처벌보다는 선언적 의미로 유지되고 있다”라고 답했다. 지난 13일에 열린 ‘총장님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의견 전달식에서 김성근 총장은 “단순한 의사표현은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변했고, 해석의 틀이 달라졌기 때문에 학칙 제77조가 적용됐던 상황은 더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며, 또한 “대학의 정치활동은 극단적으로 빠지기 쉬운데, 기술적으로 ‘극단적인’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그런 활동을 제한하기도 어렵다”라며 해당 조항이 대학이 정치의 장이 되는 것을 막고 대학과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보루라는 것을 강조했다. 김 총장은 “(학칙 제77조는) 거의 사문화 됐지만, 잠재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남겨놓은 것 같다. 학칙 개정 자체가 과격한 정치활동을 계획하는 사람에겐 시그널이 될 수 있다”라며 학칙 개정에 회의적인 의사를 보였다. 같은 자리에서 이강복 입학학생처장은 “처벌을 하고 있지 않으니, (정치활동의 선이) 자연스럽게 학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학칙 제77조를 사문화로 취급하기엔 여전히 학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항공대신문은 2024년 비상계엄 사태 당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지 못했다. 2016년엔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 대응해 개교 이후 첫 시국선언식이 있었다. 당시 총학생회장은 “학칙에 의한 징계를 막기 위해 학교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있으며, 대 학우 설득문을 게시하기 전 학생지원팀과 면담을 했다”라고 밝혔다. 2013년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 당시 총학생회는 온라인을 통해 설문을 진행했는데, 학칙 제77조(당시 제73조)를 설명하며 ‘학칙을 어기더라도 시국선언을 해야할지’ 등을 물었다. 투표 결과에 따라 당시 총학생회는 시국선언을 하지 않았다. 법학을 전공한 우리대학 정채연(인문) 대우조교수는 “실제로 처벌이 시행된 지 오래됐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의 ‘위축 효과’(과도한 규제나 압력으로 말과 행동이 위축되고 스스로 기본권 행사를 포기하는 현상)가 발생한다”라고 답했다.

학칙 개정 어디까지 왔나

학칙 제77조를 비롯한 정치 활동의 제한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엔  입학할 때 ‘정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서약서를 제출해야 했던 학칙이 폐지됐다. 2004년 당시 18대 총학생회는 학칙 제77조(당시 제73조)의 ‘정치적 활동’을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개정을 추진하며 서명 운동을 벌였지만 개정은 무산됐다. △2008년 △2012년 △2017년 등에도 총학생회가 해당 학칙을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들고 왔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2024년, 학칙 제77조는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모담)에 의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2024년 5월에 모담은 학칙개정세미나를 열어 학칙 제77조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크게 2가지 쟁점이 제기됐다. 우선, 3·4호를 삭제한다면, 일부 제한돼야 할 활동이 제대로 규제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 활동이 과도하게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한 정치적인 표현이 자유로워지면 개인의 입장이 우리대학 학생 전부의 입장으로 비춰질 수 있는, ‘과대 대표 문제’ 역시 지적됐다. 이에 대해 2024년부터 2년간 모담 위원장을 역임한 박승아(생명 21) 학우는 “이미 학칙 제50조에 ‘학생의 본분에 위배가 되거나 면학질서를 저해하는 것’ 등의 이유로 징계를 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 제77조의 3·4호는 불필요하다”라고 답했다. 과대 대표 문제와 관해선 “개인의 신분이 학생의 신분과 겹쳐서 그 기준이 모호하기에 생기는 문제다”라고 설명하며, 학생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모담은 이를 바탕으로 학칙 제77조의 개정을 요구했으나, 총학생회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개정을 하지 못했다.

이후 지난해에 제39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박준기(신소재 통합) 씨는 학칙 개정과 관련된 권한을 모담에 일임하고, 모담에게 받은 개정안을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한 후 총학생회의 의견으로 수렴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29차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모담 측에서 제출한 개정안들에 대해 논의한 결과, 개정에 대해 일부 삭제는 찬성하되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생들이 개인의 자격으로 정치적 활동을 한다 한들, 학교의 이름도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해 학교의 알 권리는 존중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는 집회 참석은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되, 집회 개최의 경우 신고제로 변경하는 구체적인 절충안을 잡아 학생지원팀에 전달했다. 박준기 씨는 “이 사안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평의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자신의 임기 기간 동안 안건으로 올라가진 않았으나 추후 상정될 것으로 알고 인수인계를 마쳤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열린 2025학년도 제5차 대학평의원회에도 학칙 제77조 관련 안건은 올라오지 않았다.

학칙은 학칙 제83조에 따라 사전공고와 대학평의원회의 심의를 거쳐 개정할 수 있다. 대학평의원회는 △학부생 대표 △대학원생 대표 △교원 대표 5인 △직원 대표 2인 △동문·외부인사 등 11인이 참석하는 우리대학의 최고 자문 기구로, 안건이 발의될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개최된다. 안건은 △대학 본부 발의 △평의원회 내부 제안 △학생이 유관 부서를 통해 논의 후 해당 부서가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는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2026년 현재, 총학생회·모담·학생지원팀 사이에 갇힌 학칙 개정

현재 활동 중인 제40대 윤준하 총학생회장은 “학칙 개정과 관련해 인수인계를 받은 사실이 없다. 지난 평의원회에 참석한 것은 사실이나 학생 대표는 평의원회에 안건을 가지고 갈 위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학칙 개정 관련해서는 모담에 전부 일임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지난 17일 제11차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최해민 모담 위원장은 “올해 2월에 학생지원팀 선생님들께서 평의원회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그 사이에 담당자가 바뀌었다. 최근에 바뀐 선생님과 소통하고, 질문에 답변을 드렸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학생지원팀은 “해당 조항이 현대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인지하고, 모담과 개정 방향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라고 답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결국 △모담 △총학생회 △학생지원팀 세 곳 모두 학칙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거나, 추진할 권한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2일 지곡회관과 학생회관에서 진행한 학칙 제77조 인지 현황 설문조사 결과
▲지난 12일 지곡회관과 학생회관에서 진행한 학칙 제77조 인지 현황 설문조사 결과

이젠 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학칙 개정이 번번이 엎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학생들의 무관심이다. 지난 12일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부생 127명 중 70.1%(89명)가 ‘학칙 제77조의 내용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했다. 협의와 소통이 총학생회 산하 전문기구인 모담과 학생지원팀 사이에만 일어나는 것도 문제다. 정채연 교수는 “학교가 알아서 개선하길 기다리면 안된다. 학칙 제77조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공론화를 통해 이미 개정됐어야 한다”라며 학생들의 소극적 주권 행사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다. 군사정권 시기 제정된 학칙을 바꾸기 위해 ‘절차’와 ‘합의’를 기다리다가, 총학생회가 올려주기를 기다리다가, 모담이 진행해주기를 기다리다 40년이 흘렀다. 이젠 학생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공론을 통해 인권을 되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