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예로부터 ‘동방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로 여러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남아있는 도시다. 관광객들은 근대의 유산을 찾아 △과거 영국의 조계지였던 와이탄 △프랑스식 건축물들이 잘 보존된 신톈디 △중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섞여 만들어진 주택인 ‘스쿠먼’이 즐비한 텐즈팡 등으로 하나둘씩 발길을 옮긴다. 그러나 다양한 명소 중 한국인에게 가장 의미 있을 법한 장소는 화려한 도심이 아닌, 허름한 골목에 자리한다. 골목 사이 소박한 건물 한 채.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위치한 곳이다. 1919년, 고종의 승하를 계기로 발생한 3·1 운동의 결과,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조직됐다. 이후, 임시정부는 한국이 광복을 맞이하는 날까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 대륙을 전전하게 된다. 현재 상하이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청사다.
상하이에 살아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꿈
임시정부 청사에 처음 발을 내디디면,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과정에 관한 내용을 한국어 영상으로 방영해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건물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분위기를 환기해 관람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영상 시청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건물에 입장한다.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기 때문에 최대한 눈과 마음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보자. 좁은 복도를 통해 입장하면, 작은 방 몇 개가 그 당시의 환경을 재현한다. 1920년대를 보는 듯한 가구와 인테리어. 그러나 화려하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지나치게 단출하다. 계단 역시 좁다.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아온 여러 명의 방문객이 한 줄로 서서 느릿느릿 가야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2층의 집무실과 생활공간 역시 마찬가지다. 넓은 건물 한 채를 구하지 못해 좁은 복층 건물에서 생활한 것이다. 비록 ‘임시’ 정부였지만, 한 국가의 정부 청사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은 초라한 건물이라 느껴졌다. 임시정부의 임원들이 묵는 3층의 기숙사 역시 상황은 매한가지다. 시대상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대학의 기숙사보다 좋다고 말하기 힘든 시설과 규모였다. 안락한 고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타국의 낯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의 독립만을 바라보신 분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알지 못하지만, 임시정부 임원들이 거주하고 생활한 공간을 살펴보며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함을 일부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독립을 염원하던 임시정부의 노력
임시정부 임원들의 거처를 지나면 별도의 전시 공간이 존재해 비교적 쾌적한 환경 속에서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역사적 이해를 돕는다. 특히 3·1 운동 직후 △한성 정부 △연해주 정부 △상하이 정부를 비롯해 국내외 여러 곳에 임시정부가 조직된 상황에서, 통합 임시정부를 상하이에 수립한 이유를 포함한 임시정부 설립 과정을 다룬 안내들이 잘 설명돼 있었다. 당시의 상하이는 국제도시였기 때문에 외교 활동을 펼치기 편리했으며. 서구 열강들 역시 상하이에 주목해 일제 또한 본격적인 탄압을 펼치기 어려웠다. 이에 더해 한반도나 일본과도 가까워 여러 활동을 전개하기 쉽다는 장점 역시 존재했다. 임시정부의 다양한 활동 역시 잘 설명돼 있다.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은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1932년 일제가 상하이를 침략한 후, 훙커우 공원에서 소위 전승 기념행사를 열었다. 윤봉길 의사는 해당 행사에 참여한 일본군 장성들에게 물병 폭탄을 던져 피해를 주는 것에 성공한다. 훙커우 공원 의거는 침체기에 빠진 임시정부의 분위기를 바꿨으며, 중국 정부와의 연합을 성사시켰다. 또한 결론적으로는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는 카이로 선언을 끌어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현재는 중국 대문호의 이름을 따 루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훙커우 공원 역시 상하이에 있으니, 기회가 된다면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전시 공간은 훙커우 공원 의거 이후 중국 각지를 거쳐 최종적으로 충칭에 자리 잡은 임시정부의 모습과 8.15 광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독립을 위한 임시정부의 탄생과 활동을 시간순으로, 세밀히 설명한 전시를 통해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 역시 임시정부의 노력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임시정부의 활동에는 중화민국과 장제스에 대한 설명이 필연적인데, 이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았다.
관광객들은 상하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화려한 야경이나, 트렌디한 거리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필자에게 상하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단 하나의 건물에 불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였다. 임시정부 청사를 둘러보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꼬박 하루가 넘는 울림을 가져왔다. 올해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사용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만약 상하이를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임시정부 청사와 주변의 근대식 거리를 걸어보며 독립운동가분들의 노고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