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 우리대학의 밤은 밝다.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에도 캠퍼스를 배회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우리대학이다. 누군가는 이를 ‘꺼지지 않는 열정’이라고 하겠지만, 정작 그 불빛 아래의 당사자들에겐 ‘생존’의 현장일 뿐이다.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모인 이곳에서, 새내기의 빛나던 눈동자는 왜 점차 생기를 잃어가는가. 혹자는 요즘 학생들이 의지와 열정이 약하고, 치열하지 못해서라며 혀를 찰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학생들이 나약하거나 성실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문제는 학생들을 번아웃으로 내모는 사회 구조와 문화에 있다.
가장 먼저 학생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무은재’란 이상과 ‘과부하’란 현실 사이의 괴리된 교육 시스템이다. “학문에는 경계가 없다”라는 무은재학부의 이상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길을 잃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전공 탐색’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기초필수 과목의 버거운 난이도와 성적에 대한 부담에 파묻혀 감히 그 너머의 무언가를 탐색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왜 배우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상실한 채 진도를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다. 또한 내용을 제대로 소화할 시간도 없이 쏟아지는 전공과목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학생끼리도 서로를 채찍질하는 데 일조한다. “15학점은 널널하고, 18학점이 평범하다”라는 기형적이지만 만연한 인식 속에, 학생들은 개인의 관심사나 속도를 무시한 채 남들만큼 과목을 채워 넣기에 급급하다. 결국 저학년 때 억지로 수강한 과목들을 고학년이 돼서야 재수강으로 소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학교가 아무리 좋은 기회와 제도를 준비해도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쳐내기에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교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인공지능 시대로의 급변은 이런 눈먼 노력에 더욱 깊은 회의감을 안겨준다. 공부로 나라를 일으키던 시대에서 공부한 기성세대는 청년들이 왜 그들의 열정을 본받지 못하는 것인가를 이해하지 못하며 다그치지만, 시대가 변했다. 단순한 지식 습득과 정보 처리는 인공지능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시대다. 인공지능을 넘어선 △새로움 △창의력 △혁신을 요구받는 청년세대는 다른 사람들보다 전공 지식을 ‘조금 더 잘 아는 것’이 차별점이 될 수 없음을 나날이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의 필요성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더 잘하는 영역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현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적’을 상실한 교육에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강의실의 무력감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쉬는 청년’ 현상으로 이어진다. 일할 능력은 있으나 취업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들을 두고, 다양한 매체는 이들을 의지가 약한 이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으로 청년들에게 기대되는 ‘치열함’이 불러일으킨 번아웃이다. 자신을 갈아 넣는 것이 성공의 방정식이며, 실패를 열정과 성실함의 부족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은 청년들을 이미 크게 소모시켰다. 이런 시선은 아직 학교라는 울타리 안의 학생들에게도 조급함을 부추기고 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은 그 고생이 성장의 거름이 될 때 유효하다. 그 대가가 스스로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훼손이라면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자해다. 이제는 ‘열심히 사는 것’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한다. 밥 먹듯이 밤을 새우고, 감당 못 할 일정을 꾸역꾸역 소화하는 것은 ‘성실함’이 아니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열정’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보고 아끼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긴 호흡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포스테키안이 갖춰야 할 진짜 능력이다.
연초에는 항상 더 ‘열심히’ 살기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한 해 내내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스스로를 불필요한 자괴감과 불안함에 빠지게 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하지만 어디로 나아갈지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괜찮은지 고민해 보는 것이다. “고민보다 Go”라고 외치며 행동하라 외치는 세상에서는 가만히 멈춰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해에는 포스테키안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길 바란다. 쉬어도 맘 편히 쉬지 못하는 당신, 조금은 멈춰도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