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점점 짧아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지는 이 계절이면 문득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처럼 지금쯤이면 수능을 마치고, 수시 결과를 기다리고, 논술 시험을 앞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몇 년을 달려오며, 목표를 이루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마치 오래 길러온 나무에서 과실을 따 먹는 순간처럼 말이다. 수험생으로서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맞이한 대학교 1학년 생활은 정말 자유로웠다. 원하던 캠퍼스 생활도 마음껏 누렸고, 새로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좋았다.
그런데 1학년 2학기가 지날 즈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서서히 찾아왔다. 분명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지만 마치 똑같은 하루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군가는 일찍부터 연구실을 찾아가고, 누군가는 인턴을 하며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었다. 반면 나는 관성대로 하루를 살아가며, 어느 순간 ‘혹시 나만 멈춰 있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과 마주하게 됐다. 목표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어느새 ‘이제 무엇을 향해 가야 하지?’라는 새로운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매년 눈에 띄게 성장했다. 성적이라는 명확한 지표가 있었고, 꾸준히 올라가는 과정에서 뚜렷한 성취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서는 스스로 평가할 기준이 흐려졌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해 막막함이 커졌다. 자유가 주는 해방감은 분명 달콤했지만 이런 달콤함이 나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방향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성취감은 점점 희미해졌고, 스스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다.
긴 고민 끝에 나는 깨달았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진정한 만족은, 작더라도 내가 스스로 세운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온다는 사실을. 목표는 꼭 거창할 필요가 없었다. 친구들과 운동 목표를 세우는 것처럼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한 학기의 학점 목표를 세워 보는 것, 평소 망설였던 어려운 과목을 수강해 보는 것, 조금 먼 미래라면 진로와 대학원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나만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삶을 더욱 단단하게, 또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1학년 생활처럼 신나는 순간만을 계속 바랄 수는 없다. 문득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지금처럼 나만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과정 역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 더 큰 즐거움을 맛보는 것도 같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나와 비슷한 이유로 공허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겨울이 새로운 목표를 조용히 품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작은 목표 하나로도 삶은 충분히 다시 뜨거워질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