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윤석열 정부 당시 소위 ‘과학계 카르텔’을 이유로 국가 연구개발(이하 R&D) 예산이 대폭 삭감돼 과학기술계는 큰 충격을 겪었다. 작년에만 예년에 비해 4조 6천억 원이 줄어 연구 현장에서는 비용 감당을 위해 심각한 어려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새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발표되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정부는 국가 차원의 전략기술과 인공지능(AI) 발전 등 4가지 목표를 핵심 과제로 제시해 R&D 예산을 전년 대비 8.1% 증액했다. 이는 역대 최대 인상 폭으로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은 국가적 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반응이 다수다. 그러나 이번 편성안이 곧바로 학문적 성과나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각에는 △단기간 내 성과 압박 △기초과학 소외 △재정건전성 악화 등 여러 우려 섞인 의견도 제기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연구중심대학인 우리대학의 방향성도 주목받고 있다.
국가 주요 정책 변화와 그 의미
이번 R&D 예산은 30조 1천억 원으로 지난해 24조 6천억 원에서 무려 5조 7천억 원 상승했다. 정부는 이른바 AI(A)·바이오(B)·콘텐츠(C)·방산(D)·에너지(E)·제조(F) ABCDEF 첨단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을 밝히며 △첨단 산업 핵심기술 개발 △민간 수요 기반 기술 사업화 △인재 확보 △기초연구 생태계 복원 등 4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의 예산 변화다. 과기정통부에 편성된 R&D 예산만 9조 7천억 원으로 24년도 대비 약 16.1% 증가했다. AI 예산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부의 AI 예산 10조 1천억 원 중 절반을 과기정통부에 배정해 AI 대전환에 심혈을 기울이겠단 포부를 밝혔다. AI 대전환은 국가적 AI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을 목표로 GPU 1만 5천 장 추가 확보, AI 반도체 실증 지원 등의 사업을 포함한다. 또한, 연구자 중심의 R&D 생태계 조성에도 4조 5천억 원을 투입하며 우수 인재 집단 확대를 위한 노력에도 나서고 있다. 국가 연구소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3배 확대됐고, 학생 연구자를 위한 지원금을 확대 편성해 위축된 연구 환경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우리대학 김기흥(인문) 교수는 이번 예산안이 국가 주도로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매우 야심찬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대통령실에 새로이 마련된 ‘AI미래기획수석’ 자리가 그 의지를 강력히 보여주고 있지만, 기초과학 등 여타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행정 및 지원의 부재가 다소 아쉽다”라는 우려를 표했다. 미국의 과학기술정책실(OSTP)이나 영국의 연구위원회(Research Council)처럼 과학기술 예산 배정이 유연하게 이뤄지는 새로운 모델 구축의 필요성이 연구 기금 결정은 정치인이 아닌 연구기관이 주도해야 한다는 영국의 할데인 원칙(Haldane Principle)에 따라 과학자 사회에서 공론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의 단계적 폐지로 인해 연구비 획득을 위해 끊임없이 지원서를 쓰고 단기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에만 매달리는 부정적인 연구 문화의 근본적 변화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강조했다. 나아가 정부 주도의 강력한 지원이 더해진다면 AI 연관 학문과 응용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도약의 기반이 되리라는 기대를 보였다.
“이번 증액 공학 연구의 기폭제 역할이 돼야...”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AI 중심 투자 기조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리대학 김동우(인공지능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AI 집중 투자가 학문적 연구와 산업 응용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대규모 R&D 예산이 투입되면 대학 연구실의 실험 규모와 깊이가 확장되리라는 긍정적인 기대를 전했다. 그러나 과도한 AI 집중 기조에 우려를 드러내며 AI 연구의 본질인 문제 해결과 방법론의 응용 및 정교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우리대학이 AI 선도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의료, 사회과학 등 여러 학제 간 협력이 필수적임을 언급하며 AI가 이른바 연구 촉매로 작용해 학문 간 연구 방식을 혁신할 수 있도록 대학 연구가 설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우리대학의 특성을 살려 산업체와의 공동 연구뿐만 아니라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개방형 연구를 통해 AI 연구의 거점 센터로 발전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우리대학 한승진(물리) 교수는 이번 증액을 지난 3년간 축소됐던 예산이 복구되는 움직임이자 연구에 어려움을 겪던 개인 연구자가 재기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도 지난 삭감을 회복하는 수준 이상의 지원이 예상돼 업계에선 긍정적인 분위기를 느낄 것으로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대학 차원에서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과학 교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전하며 이번 증액이 지원과 투자로 이어지는 기폭제 역할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학생 연구자가 체감하는 변화
정부의 R&D 예산 확대가 발표되면서 대학 연구 생태계에도 변화가 예고돼 있다. 본지가 인터뷰한 사람 중 한 명인 대학원생 곽동재(첨단원자력공학 박사) 씨는 이번 예산 증액에 대해서 당장 우리대학 대학원생의 생활에 큰 영향은 미치지 않겠지만, 졸업 후 일자리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는 있다고 답했다. 과기정통부가 내세운 전국 29개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생 약 5만 명에게 매월 80만~110만 원의 연구생활장려금을 지원하는 한국형 스타이펜드 제도에 대해 곽 씨는 “스타이펜드 제도를 통해 생활비가 보장되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일제 대학원생의 등록금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학 차원의 대응 전략
R&D전략팀 김나영 씨는 전체적으로 보면 2024년 기준, 우리대학 연구비 중 75% 이상이 국가 R&D 과제에서 확보돼 예산 변동이 연구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예산 확대는 신규 과제 수주와 신진 연구자 육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리대학은 예산 확대 기조에 맞춰 AI 위원회를 구성해 △연구 △교육 △인프라 확충 전략을 마련 중이며, 글로컬 사업비로 2024년 초 연구소 19개를 설립했다. 이 중 ‘제로 트러스트 AI 연구센터’는 6개의 AI 세부 분야 연구를 수행하며, 연 10억 원 규모의 글로컬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또한 국제공동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공동 워크숍, Seed Funding 과제를 운영하고, 정부 대형 연구 사업 수주를 위해 연 10팀 내외에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 2025년에는 고성능 딥러닝 시스템(8×NVIDIA H200 GPU) 도입도 예정돼 있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포항가속기연구소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막스플랑크한국포스텍연구소(MPK) △IBS 포스텍 캠퍼스 연구단을 통해 기초과학의 심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2024년부터는 기초과학연구소를 통해 4년간 총 6억 원 규모의 공모 사업을 운영해 신진 기초과학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제공하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국가과제 종료 후에도 연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지원하는 제도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대학부설연구소를 전략적으로 육성해 다양한 분야의 융합 연구를 확장한다면, 학제 간 경계를 넘어선 협력과 혁신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