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화두일여(話頭一如)
[독자논단] 화두일여(話頭一如)
  • 현상훈 / 수학 03
  • 승인 2006.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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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교수 임면권을 둘러싼 일로 학교가 크게 술렁거렸다. 포스테키안의 일원으로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뭔가 말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으로 원고를 청탁받았는데, 막상 쓰려고 보니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묘연한 화두(話頭)를 좇아 화두일여(話頭一如), ‘무엇이 문제인고?’ 되뇌다보니 마감이 임박한다.
누구는 내게 이르길 이사회가 학교를 맘대로 주무르려 하니 문제라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누구는 학교를 소유한 자로서 자신이 학교에 누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곁에서 지켜보는 친구는 이 말도 저 말도 옳다는 나를 두고서 그르다 한다. 또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 나의 얕은 식견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나는 각자의 입장 차를 옳고 그름으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두부장수 아들의 계산법’이라는 일화를 소개하겠다. 초등학교 산수 시간에 선생님이 1 더하기 1은 무엇이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모두가 2라고 답을 하는데 두부장수의 아들이었던 한 학생이 “아닙니다. 3입니다.”라고 답을 한다. “아니, 왜 2지 3이냐?”라고 재차 물어도 끝까지 3이라고 우기더란다. 어이가 없었던 선생님은 퇴근 후 친구들에게 물었다. “두부와 관련된 다른 특별한 계산법이라도 있는가?” 아무에게서도 답을 얻지 못하자 밤새 고민을 한 선생님이 다음날 다른 반 아이들에게 물어 보았다. “어제 우리 반 두부장수 아들이 1 더하기 1이 3이라고 했는데, 여러분 중에서 왜 3인지 아는 사람?” 그러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서 답을 하더란다. “선생님, 그것은 그 아무개가 계산을 잘못해서 그렇습니다.”
문득,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누구나 계산을 다르게 혹은 틀리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의 입장 차를 생각한다면 그의 이야기는 나와 다를 수 있다. 또한 입장 차이를 고려했을지라도 누군가가 개진한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입장 차이에 대한 관대함과 옳고 그름에 대한 자연스런 인정이 현상의 본질을 찾는 데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다. 추상적 논의만으로는 자칫하면 양비론과 양시론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으므로 이번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보려 한다.
먼저 묻고 싶다. 우리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떤 이들은 이사회에게 학교가 넘어간다고 한다. 뺏기기 전에 우리가 나서서 학교의 주인됨을 보여주자고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이사회가 학교를 소유하고 있으니 그들이 학교의 실질적 주인이라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스승이신 교수들이 응당 학교의 주인으로서 마땅하다 한다. 직원 들은 어떠한가? 이사회겚낵?학생 그리고 직원 모두가 포스텍의 주인이 될 수는 없는가? 이러한 물음은 곧 여러 입장의 차이를 바라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다양한 입장의 공존이 허락될 때 행위의 옳고 그름은 합의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사회의 입장 차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관 개정은 합법성의 여부를 떠나서 교수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내부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에서 학생들이 궁극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그들의 의사 표현 공간 부재이다. 주인으로서의 참여 공간 확보를 학생들은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일을 통해서 학교의 앞날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적어도 ‘학교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었던 점을 꼽고 싶다. 기존의 교수와 이사회 간의 의사 결정 구도에서 학생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은 간과할 수 없다. 사건에 대한 학생들의 논의가 단순한 이사회에 대한 비난에서 나아가 그들의 안정적인 참여 공간 확보를 주장하는 것에서 의식이 진화함을 엿볼 수가 있다. 물론 이사회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았고 저와는 사뭇 다른 논의들이 많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넓게 보면 답답함은 해결을 구하고, 욕구는 해소를 찾으며, 구속은 자유를 꿈꾸게 만든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속에서 보다 나은 POSTECH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