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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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5.10.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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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이 남긴 민주주의의 교훈

9월 9일 학생총투표로 ‘포항공과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이 가결됐다. 본 글에서는 총여학생회 폐지 과정 속에서 드러난 절차적 문제와 민주주의적 빈틈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번 사안은 지난 4월 29일 제13차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부총학생회장이 총여학생회 폐지 관련 논의를 발의하면서 본격화됐다. 사유는 ‘대표자가 없고, 세칙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이어 5월 13일 제14차 중운위 회의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안건을 전체학생대의원회(전학대회)에 상정했다. 안건의 목적은 ‘방향성 논의’라 했지만, 공식 발의문에는 ‘세칙 개정’이라는 표현이 포함됐다.

6월 15일 제3차 전학대회에서는 ‘총여학생회 폐지 통과’라는 안건이 세칙 개정이라는 중요 의결 안건임에도 일반 의결 요건으로 표결됐다. 출석 14명 중 찬성 8명으로, 세칙 개정 요건인 ‘출석 2/3 찬성’에는 미달됐다. 이후 8월 17일 제4차 전학대회에서 앞선 의결을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수정’함으로써 표현상의 오류를 시정했다. 동시에 총여학생회 폐지 여부를 ‘총학생총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9월 1일 총투표가 공고되며, 총여학생회 폐지를 안건으로 공지됐다. 9월 9일 총투표 결과, 투표율 50.7%, 찬성률 88.2%로 안건이 가결됐다.

그러나 총여학생회 폐지는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따라서 총학생회는 이를 신중히, 또 신중히 처리했어야 했다. 그러나 회칙, 세칙, 규칙, 자치규칙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고, 공식 문서에 담긴 언어는 부적절했다. 발의부터 공고, 표결, 결과 안내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모호하고 부정확한 표현이 반복됐다. 폐지는 숙의 끝의 결론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이후에야 총학생회는 일부 표현을 정정하고 해명에 나섰다. 학생총투표는 그나마 절차적으로 정돈된 단계였다. 사전 공고, 투표소 운영, 연장 규정까지 비교적 체계적으로 준비됐고, 투표율 50.7%, 찬성률 88.2%라는 수치로 가결됐다. 하지만 이 수치는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전체 유권자 중 절반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찬성표를 던진 629명은 전체 재학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단순히 ‘절차는 지켰다’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말하기에는, 이 사안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찬반을 떠나, 이 안건이 충분히 설명됐는지, 충분히 논의됐는지, 또 학생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를 던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드러난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이 절차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몇몇 학생의 꾸준한 문제 제기로 오류가 드러나고 수정됐지만, 많은 학생은 이 사안의 본질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폐지됐다더라’라는 결과만을 받아들였다.

회칙과 세칙, 의결 요건, 공고 규정, 전학대회와 중운위의 권한 차이 등 학생사회 운영의 가장 기초적인 구조조차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학생은 열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총여학생회를 옹호하든 반대하든,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다루면서도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아픈 대목이다.

이것은 단지 행정적 실수가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의 반영이며, 우리가 ‘공론’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빈약한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대학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의견을 표명하고, 제도를 설계해 보는 민주주의의 실험장이기도 하다. 학생 자치가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 해서 외면하는 것, ‘공부나 하자’라는 말로 참여를 유예하는 것은 결코 정치적 중립이 아니다.

공학도가 배워야 하는 것은 수학과 물리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권한과 책임의 구조, 다수결의 윤리와 소수자의 권리 역시 미래를 설계할 이공계 청년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교양이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다음에 또 다른 자치기구가, 다른 소수자의 이름이 표결에 오를 때, 우리는 과연 더 나은 학생사회가 돼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지금의 우리는, 아무 말도 하기 어렵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지우며, 너무 쉽게 동의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지는 결코 중립이 아니다. 이번 경험이 학생사회 민주주의를 되돌아보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