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지 없는 산책이 줄 수 있는 것들
종착지 없는 산책이 줄 수 있는 것들
  • 이현아 / 화공 20
  • 승인 2023.01.0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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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는 학교 음악 교사로, 재즈가 자신의 진정한 소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존경하는 도로시아 밴드에 합류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고 그 외의 모든 일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단계일 뿐이라며 터부시한다. 목표를 이루게 된 날, 그가 공허함을 토로하자 도로시아는 물고기 이야기를 들려줬다.

“젊은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물었지. ‘바다를 찾고 있는데요’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그러자 젊은 물고기는 이렇게 대답했어.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찾는 것은 바다라고’”

‘소울’은 21살이 되자마자 본 영화였는데, 조에게 내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설정했고, 이를 이루고 나면 마냥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룬 후에는 행복이 아닌 허망함만 남았다. 입학과 동시에 혼자 해결하기 힘든 과제들이 쏟아졌고, 수업 내용은 따라가기 어려웠다. 비대면 상황으로 인해 타인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이해하지 못한 내용들이 늘어갔고, 학기 말에는 수업을 듣기 위해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매분 매초가 내 무능력을 증명당하는 시간 같았다. 조의 “오늘 내가 죽으면, 내 삶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날까 봐 두려워요”라는 말이 공감되면서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세운 목표가 오히려 날 옥죄는 지금, 2차 목표는 어떤 것으로 설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목표가 또다시 날 괴롭게 만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런 불안 속에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계를 제출했다.

휴학에도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그저 힘에 부쳐 학업을 중단했다는 사실이 한심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와중 ‘소울’을 다시 보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조가 바람에 휘날리는 단풍 씨앗을 손에 쥐며 공기를 들이마시는 장면이 가슴을 울렸다. 온전한 휴식을 목격한 기분이었고, 이번 휴학 기간에는 쉼을 즐기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여러 핑계로 미뤄뒀던 일을 해나갔다. 도서관에 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학원에 가는 지름길이었던 호수공원을 천천히 산책했다. 친구들과 만나 카페에서 공부하는 대신 좋아하는 디저트를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기 시작하자 문득 찾아오는 우울감이 두렵지 않아져서 그것을 받아들이며 감정과 원인을 생생히 기록했다.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정리되는데, 이때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산책, 독서, 운동 등을 통해 주의를 환기했다. 오늘 우울한 일이 있었다면, 하루 더 살아 내일은 기쁜 일이 생기길 바라면 된다.

삶은 종착지 없는 오래달리기다. 무조건 당장의 행복을 미루기보다는 현재의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만약 너무 지치고 힘들다면, 오래달리기를 위한 자신만의 속도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매 순간 전력을 다해 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바람에 흩날리는 단풍 씨앗을 손에 쥘 수 있는 정도의 속도로 달린다면, 숨이 차지 않아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