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화합으로 만드는 융합
소통과 화합으로 만드는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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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5.0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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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바벨탑이 나온다. 원래 세상은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는데, 하늘 높이 탑을 쌓는 인간의 욕심을 보고 신이 벌을 내렸다. 사람들이 쓰는 말이 서로 달라져서 알아듣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해 더 이상 하늘에 이르지 못하게 했다. 우리 역시 한반도를 벗어나면 다른 언어를 써야 한다. 이를 이어주는 것이 통역과 번역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를 다 익힐 수는 없기에 영어를 공통어로 택해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 바벨탑도 있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오해한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본인의 주장만 앞세운다. 사람의 귀는 억지로 닫을 수 없지만 입은 본인의 의지로 다물 수 있다. 항상 귀를 열어 잘 듣고, 본인의 말은 아끼라는 자연의 뜻인 듯하다. 그런데 이를 거스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인지 서로 반목하고 거리를 두며 사회는 분절된다. 세대 간의 갈등뿐 아니라 젠더, 빈부, 지역 등 세상에 존재하는 바벨탑이 점점 늘고 있다.

바벨탑은 학문에도 있다. 태초에 학문은 하나였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이 굳이 여러 갈래로 나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물리학, 전자공학, 사회학, 경영학, 철학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로 나눠진다. 이 구분은 비교적 최근에 이뤄졌다. 이전에는 법학자가 철학자이며, 의사이고 건축가였다. 작가와 정치가, 과학자의 일도 함께했다. 고대의 학자가 현대보다 훨씬 우수해서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은 이들 학문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단지 현대 학문의 잣대로 보니 여러 곳을 넘나드는 슈퍼 천재가 있을 뿐이다.

초기에는 인류가 가진 지식, 자연을 이해하는 수준이 높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점점 늘어나고, 학습과 연구의 편의성을 위해 학문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각기 맡은 학문을 열심히 하고, 이들의 지식을 합치는 방식으로 자연을 이해하려 했다. 학문 사이의 장벽이 그리 높지 않았다. 적절한 분업과 활발한 교류는 보다 적은 노력과 자원의 투입으로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고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편의상의 구분은 서로의 소통과 화합을 막는 거대한 장벽으로 변했다. 각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해 왔다. 차츰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 시작한다. 학문의 바벨탑이 쌓인 것이다. 분야끼리 다른 용어와 문화는 서로의 소통과 이해를 가로막는다. 가끔 다른 분야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연구들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며 놀라곤 한다. 우연의 일치에 신기해할 것이 아니라 바벨탑이 만든 비효율의 결과에 아쉬워해야 한다.

학문의 바벨탑을 없애려 융합을 이야기한다. 융합 교육을 받고 융합 연구에 가산점을 준다. 원래 하나였던 학문을 나누고 벽을 쌓았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교 교육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한 역사가 길다. 그 덕에 학문의 바벨탑이 더욱 높은 것 같다.

우리대학도 최근 융합대학원을 만들며, 학문의 바벨탑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은재학부를 만들고 무학과 제도를 실시하는 배경에도 융합이 있다. 물론 이전에도 융합 교육과 연구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하지만 많은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미했다. 무엇이건 무너뜨리긴 쉬워도 이를 바로 세우는 건 무척 어렵다. 그래서 더욱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이름만 융합일 뿐, 예전과 다를 바 없는 교육과 연구가 이뤄지기 십상이다. 무은재학부와 융합대학원을 적극 활용해 제대로 된 융합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최근 하는 융합의 노력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얼기설기 엮인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상황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다른 이들과의 조화와 상호작용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이다. 소통과 화합의 소화제는 학문과 사회 모두에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