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 보내는 법
나의 겨울 보내는 법
  • 이안나 / 기계 조교수
  • 승인 2022.01.0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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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부임한 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무은재학부 지도교수로 지낸 지도 3년이 됐다. 무은재학부생들과 면담하며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은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본인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인지 혹은 내게 안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진로 선택처럼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 도움된다. 다양한 경험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을 찾는 데도 도움된다. 나는 내가 있는 장소와 계절을 잘 누리고 즐기는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포항에 오기 전인 2018년, 나는 스위스에 있었다. 스위스의 연말은 동화 같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동네 중심가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캐롤이 울려 퍼졌다. 일과 후에 연구실 동료들과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며 따뜻한 와인인 뱅쇼를 사 마시던 기억이 난다. 한국 카페에서 파는 과일 차 같은 뱅쇼와는 다르게 럼이 들어간 뱅쇼, 꼬냑이 들어간 뱅쇼 등 다양한 술이 들어 있어서 신기했다. 스위스 이야기를 하면 눈 쌓인 알프스 산맥도 빼놓을 수 없다. 한여름에도 학교 연구실 창문 밖으로 저 멀리 눈 쌓인 몽블랑이 보였다. 겨울이 되면 설산이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스키장이 곳곳에 있어서 스노보드를 타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풍경과 푹신한 눈의 촉감은 잊을 수가 없다.
박사과정을 보낸 미국 보스턴의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다. 매년 눈보라로 인해 며칠씩 통행이 금지됐다. 눈 치우는 차가 길을 휩쓸고 가면 차도와 인도 사이에 사람 키만큼 높은 눈 벽이 생겼다. 연말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학교가 휑하지만, 새해가 밝으면 금세 활기를 찾았다. 찰스강에 뜨는 새해 첫 일출을 보러 나가면 어김없이 한국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정이든 구정이든 설날이 되면 한국 학생들끼리 모여서 전을 부치고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 곁에 없어야 소중함을 안다고 한국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떡국인데 미국에서 먹으니 참 맛있었다. 유학 중에 운동도 이것저것 많이 했다. 겨울에는 학교 실내 테니스장 예약이 엄청 치열해서 매일 아침 7시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전화 예약을 시도했다. 겨울에는 한창 NBA 시즌이기도 해서 보스턴 셀틱스의 농구 경기를 보기도 했다. 딱히 농구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도 잘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직접 보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셀틱스 모자도 사고 여러 번 경기를 보러 갔다.
포항에 처음 자리 잡은 시점도 겨울이었다. 오자마자 가족들과 겨울 바다를 보러 가고, 친구들을 포항에 초대해 집들이하며 제철인 과메기와 대게를 먹었다. 포항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기념으로 트리를 샀는데 올해에도 11월부터 꺼내 장식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딸아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반짝반짝 손을 흔들며 “트! 트!”라며 트리를 찾는다. 해님, 달님, 구름을 알고 인사하는 아이에게 눈이 뭔지 알려줄 생각에 설렌다. 날씨가 좀 더 추워지면 경주월드에 눈썰매를 타러 가기로, 새해 첫날 아침에는 일출을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학교로 복귀한 겨울에 우리 연구실 한 학생이 붕어빵을 사와  나눠준 적이 있다. 우리학교가 붕세권이었구나! 역에서 가까운 지역을 역세권이라고 하듯 붕어빵 가게가 가까우면 붕세권이라고 한단다. 오랜만에 먹는 붕어빵이 반갑기도 하고 맛도 좋아서 어디서 샀냐고 물어본 후 여러 번 사서 먹었다. 어쩌면 학생들이 나보다 더 동네의 재미를 발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는 일도 많고 우울감이 생기기도 쉬운 요즘이지만, 모두 주변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 마음을 따뜻하게 채우는 겨울이 되길 바란다.
이안나 / 기계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