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리석은 가짜 흡혈귀 이야기
어느 어리석은 가짜 흡혈귀 이야기
  • 김성아 / 컴공 19
  • 승인 2021.06.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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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성아야, 너 혹시 흡혈귀니?” 그 말을 들은 나와 친구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 내가 창가 자리에 앉으면 교실의 모든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려 햇빛을 차단하려 애썼기 때문이다. 나는 호불호를 밝히는 것에 거리낌이 없기에 당당하게 햇빛이 싫다고 말했고 그날 이후로 반에서 내 별명은 흡혈귀가 됐다.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바닷가에서 선크림을 바르는 것을 잊어서 전신이 심하게 탔던 경험 이후로 햇빛을 싫어하게 된 것 같다. 모래사장은 더 많은 자외선을 반사하고 물에 젖은 피부는 자외선 투과율이 평소보다 몇 배나 높다. 피부가 까맣게 되는 것을 넘어 발갛게 되고 벗겨진 이후 햇빛 쐬는 것을 무척 조심하고 피하게 됐다.
대학교 친구들에게 중학생 때 일화를 말했더니 다들 현재의 내게도 어울리는 별명이라며 웃었다. 2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햇빛을 꺼리고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햇빛을 싫어하고 깜깜한 밤에 활동한다는 점에서 내 몸은 점점 흡혈귀와 가까워지는 것 같다. 피를 먹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햇빛에 노출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면역력 향상 △행복과 관련된 호르몬 분비 촉진 △비타민D 생성 등 햇빛을 쐬는 것은 여러모로 인체에 중요하다. 일부러 햇빛을 피하는 데다가 올빼미형 생활을 보내는 내게, 이토록 중요한 햇빛 노출량은 남들보다 배로 적을 것이다.
나 또한 별명이 흡혈귀일 뿐 실제로 평범한 인간이기에 적당량의 햇빛이 필요하다. 햇빛 쐬는 것을 꺼릴만한 질병도 없으며 단순히 햇빛이 싫어서 그늘만 찾았고, 대부분이 좋다고 하는 햇볕 쨍쨍한 날에는 미간을 찌푸렸다. 맑은 날에 인상 쓰는 나를 보고 몇몇 사람은 독특한 혹은 이상한 사람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도 햇빛을 피해 다닌 탓에 건강한 체질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햇빛이 우리 몸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과 필요성을 알면서도 ‘나는 싫은데’라는 태도로 햇빛 쐬는 것을 거부하길 고집했다. 스스로 세운 호불호의 벽에 갇혀, 좋지 않은 경험을 시작으로 햇빛을 불호의 선 안쪽에 던지고 외면한 셈이다.
말에는 힘이 있어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안에서도 딱딱하게 굳는다. 자기주장이 확실하며 좋고 싫음이 분명한 내 성격이 장점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나 최근, 여유를 가지고 나간 산책길에서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에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받은 순간, 햇빛의 소중함을 몹시 오랜만에 깨달았다. 왜 지금까지 이 따뜻함을 꺼렸을까? 호와 불호를 명확히 아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가끔은 곰곰이 돌아보자. 혹시 한 번의 경험으로 생긴 순간적인 호불호에 갇힌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한 번 좋았다고 늘 좋을 수 없고 한 번 싫었다고 평생 싫어할 거라 단언할 수 없다. 많은 것이 그렇다. 물론 변치 않는 것도 있지만,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만의 틀 안에 가두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을 고집한다면 큰 손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마터면 몇 년은 더 햇볕이 주는 따뜻함을 모르고 지냈을 어리석은 가짜 흡혈귀처럼.